이래야 ‘진상’의 대명사 ‘상철 선배’다. 웹툰과 다르게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에서는 상철(문지윤 분)에게 짠한 사연이 부여되는 바람에 잠깐 동정심이 들 뻔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흔들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지난 11일 방송된 ‘치인트’ 3회에서 상철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였다. 이날 상철은 방송 내내 마시고, 훼방 놓고, 버럭하고, 빈정댔다. 남녀 등장인물들의 훈훈한 외모 탓에 환상 속 캠퍼스 라이프라는 한계를 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치인트’가 상철 선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극현실주의를 입었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 같은 존재랄까.
상철이라는 캐릭터는 익히 알려져 있듯 재학생에게도, 졸업생에게도 악몽 같은 캐릭터다. 오히려 드라마 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기 쉬운 인물이라 더욱 그렇다. 악명 높은 강교수(황석정 분)의 수업에서 상철과 한 조가 된 홍설(김고은 분)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이를 방증한다. 홍설을 ‘홍 후배’라 부르는 모습은 언뜻 넉살 좋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조장을 맡겨 귀찮은 일을 다 떠넘기려는 수작의 첫 걸음이었다.
조별 과제를 위한 회의 때는 또 어땠나. 술에 절어 가방도 풀지 않은 상철은 남아프리카 전자시장의 특성을 조사해 달라는 홍설의 요구를 “내가 언제 다 하나. 다 영어인데. 가 보지도 않은 나라다”라며 자른다. 그러더니 “컨디션도 별로고, 회의 할 기분도 아니고. 회의 끝!”을 외치고 자리를 뜬다. 다른 조원들까지 “상철 선배를 어떻게 견디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다음 조 모임 하루 전날 밤 “급한 일이 생겼으니 하루만 미루자”고 해 놓고 친구들과 진탕 술을 퍼마신다든가, 그 광경을 SNS에 실시간으로 찍어 올린다든가 하는 상철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SNS에 사진과 함께 적어 올린 ‘오늘 밤도 즐겁게 달리자~ 마셔라! 청춘아! #행복 #청춘 #나의_비타민_소주양♥’이라는 문구까지 읽고 나면 이미 정신이 아득해져 현실과 드라마의 분간이 힘들어질 지경이다.
홍설은 결국 발표의 운도 못 떼 본 채로 D를 받았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답답한 조원과 개인 과제는 하면서 조별 과제는 참여하지 않는 얌체 조원은 양반이다. 남 탓은 물론이고 “D 좀 맞은 걸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지 말라”는 애프터 서비스를 잊지 않는 상철이었다. 복도에서도 저 멀리 걸어 오는 홍설이 보이자 “여자들은 말이야, 군 생활을 안 해 봐서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뻔한 이야기를 주워 섬기기까지.
이처럼 웹툰 속에서 3D프린터로 뽑아낸 듯한 상철 선배는, 보는 이들의 혈압을 올릴 지언정 ‘치인트’에는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극 초반 유정(박해진 분)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홍설을 괴롭히는 인물인지라 주요 갈등을 유발하는 캐릭터로 적합하다. 무엇보다도 ‘상철 선배’가 그간 떨쳐온 악명과 그 지독한 현실성이 막장 드라마처럼 시청자들을 이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제발 그를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게 애잔한 모습만은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길. /bestsurplus@osen.co.kr
[사진] ‘치인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