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응답하라’ 출신 배우들의 험난한 고전이 의미하는 것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1.12 17: 2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신원호 연출)이 매회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부작 중 총 18회까지 방송된 이 케이블 드라마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연기자들을 일제히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대중을 열광시킨 히트 상품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데뷔작 ‘선암여고 탐정단’으로 연기 쓴맛을 본 걸스데이 혜리는 덕선이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가장 상품성 높은 아이돌 스타로 부각됐다. 뿐만 아니다. ‘족구왕’ ‘소셜 포비아’ ‘잉투기’ 등 주로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활동해온 안재홍 류준열 류혜영 고경표도 ‘응팔’을 통해 배우 인생 곡선이 우상향으로 바뀌게 된 케이스다.

벌써부터 인기 바로미터인 광고 제의가 밀려들고 영화, 드라마의 차기작 제안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만큼 문전성시다. ‘박보검이다, 정환이다’ 등 이 드라마의 최고 수혜자가 누구냐를 놓고 업계에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것 또한 ‘응팔’의 불판 인기를 반증하는 대목일 것이다. 이들의 높아진 주목도는 ‘역시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명제를 입증시킨 좋은 사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응팔’ 배우들이 과연 2~3년 후에도 연기자로서 지금과 같은 인기와 열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기본기와 성품, 연기에 임하는 진지함과 행운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개인차가 나겠지만, 과거 ‘응답하라’ 선배들이 걸어간 궤적을 살펴보면 미래 전망이 무조건 낙관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게 함정이다.
지난 2013년 방송된 ‘응답하라 1994’의 세 주역 고아라 유연석 정우만 놓고 봐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발견하게 된다. 고아라는 당시 성나정으로 덕선이 못잖은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조선마술사’의 흥행 부진으로 여전히 여주인공의 무게감을 견뎌내지 못 하고 있다. 이제훈과 찍은 ‘명탐정 홍길동’이 기적같은 반등의 기회가 될지 궁금한 대목.
유연석도 ‘응사’ 이후 드라마 ‘맨도롱 또똣’, 영화 ‘상의원’ ‘은밀한 유혹’에 잇따라 주연으로 출연하며 의욕을 보였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3전3패다. 그나마 손익분기점을 넘긴 ‘제보자’ ‘뷰티 인사이드’가 버티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14일 개봉하는 ‘그날의 분위기’와 편집중인 ‘해어화’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주연 체제를 굳힐지, 아니면 제동이 걸릴지 판가름될 전망이다.
정우 역시 이듬해 ‘쎄시봉’의 흥행 부진이 뼈아팠다. CJ는 ‘쓰레기’의 인기가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 붙길 바랐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1년 전처럼 따스하지 않았다. 돈과 시간이란 비용을 지불하는 매체 특성상 드라마 보다 몇 배 더 냉혹한 평가가 따르는 게 영화다. 700만 관객을 넘긴 ‘히말라야’로 자존심을 회복했지만 황정민에게 힘에 부치는 연기를 노출했다는 아쉬움 역시 나온다.
‘응답하라’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흥행 타율이 높은 사람은 바로 김성균이다. 그 역시 ‘허삼관’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퇴마: 무녀굴’로 쓰리 콤보 부진을 맛봐야했지만 ‘군도’ ‘우리는 형제입니다’ ‘살인의뢰’로 주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높은 타율을 위해선 일단 타석에 자주 들어서야 한다는 걸 보여준 경우다.
첫 주연 영화 ‘쓰리 썸머 나잇’으로 서늘한 여름을 경험한 ‘하숙생’ 손호준과 바로, 도희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 하고 있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 ‘응답하라 1997’로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인국은 영화 ‘노브레싱’에 출연했지만 높은 현실의 벽만 실감해야 했고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 했다. 정은지는 연기 대신 케이블 채널 맛집 탐방 프로에 출연중이다.
‘응답하라’ 출신 배우들이 차기작에서 너나없이 주연 자리를 꿰차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건 거품과 착시 때문이다. 발성과 딕션, 감정 표출법 등 여전히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음에도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관심과 인기를 받다보니 금세 지쳐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는 분석이다. 예능 출신 작가와 PD가 만드는 ‘응답하라’가 캐릭터와 에피소드 구축에 능할 뿐, 정통 드라마 호흡을 갖추지 못 한데서 오는 예견된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들 배우로서 좋은 재목임에 틀림없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기획사의 조급증 탓에 오히려 장기적인 상품 가치가 하락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응팔’ 배우들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심도 깊은 연기자로 한 뼘씩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방송 전 제작진의 다이어트 요구에 불평불만 대신 감량에 힘써야 하고, 배우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선글라스 협찬 보다 작품을 위한 건설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게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부디 휴대전화를 발밑에 감춘 채 리허설이나 녹화에 임해 제작진들이 뒷목 잡고 쓰러지는 일 역시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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