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악역 전문'으로 이름을 알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배우 유연석은 어느새 '여심 전문 사냥꾼'이 됐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다정하고 자상한 '칠봉이' 캐릭터로 '대박'을 터뜨린 그는 이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영화 '제보자'나 '상의원' 등으로 진지한 면모를 보여줬던 그이기에 신작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은 여성 관객들에게 가문에 단 비가 내린 듯 반가운 소식이다.
유연석은 영화 '그날의 분위기'(조규장 감독)에서 KTX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웬만하면 그쪽과 자겠다"고 성희롱성 발언을 날리고, 하룻밤의 사랑을 적극 지지하는 등,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스포츠 에이전트 재현 역을 맡았다. 10년 사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해 헉헉대는 '철벽녀' 수정(문채원 분)과는 완벽하게 대조를 이루는 캐릭터.
어찌 보면 천하의 몹쓸 캐릭터로 여성 관객들에게 찍힐 수도 있겠으나,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밀크남' 못지 않게 매력적인 바람둥이다. 스크린 속 유연석은 제옷을 입은 듯 바람둥이 역할을 능청스럽게 해냈다.
재현이라는 캐릭터는 유연석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짝사랑남'의 역할을 맡아 왔다. 대표적인 캐릭터인 '칠봉이'를 비롯해 MBC '맨도롱 또똣'에서도 수 년 동안 한 여자만을 바라본 '순정남' 백건우 역을 맡았었다. 대미를 장식했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연인 이수(한효주 분)와의 재회에 마냥 기뻐하는 '순수남' 우진이었다. 그 때문에 '짝사랑'을 끝내고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는 유연석을 보는 재미는 '그날의 분위기'의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자칫 어색할 법도 하지만, 역시 배우는 배우다. 인터뷰에서 '맹공남' 캐릭터를 맡은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다"고 토로했던 그지만, 영화 속에는 그런 낯가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유연석의 '사랑에 빠진 바람둥이' 연기에서는 자연스러움이 흐른다.
또 유연석은 '철벽녀' 역을 맡은 문채원과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단호한 표정으로 재현의 대시를 거절하는 수정, 그런 수정에게, 그는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때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때로는 발 마사지를 해주는 따뜻한 스킨십으로 다가가며 카멜레온 같은 재현의 매력을 살렸다. 재현의 캐릭터는 배우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됐다고 알려진 바. '여심'을 잡는 유연석의 능력이 흥행으로 얼마만큼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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