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슬프고 잔혹한, ‘리멤버’ 남궁민의 악역史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1.14 16: 25

 데뷔 후 16년이 지나는 동안, 배우 남궁민의 대표적 이미지는 분명했다. 깔끔하고 귀티 나는 외모와 묵직한 저음이 재벌2세 내지는 ‘실장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 출연작들을 되짚어보면 외모가 주는 전형적 느낌을 탈피한 다채로움이 있다. 바보처럼 착한 역할부터 독한 악역까지 모두 존재한다. 많은 미남 배우들이 스스로의 ‘잘생김’에서 한계를 느끼는 사이, 남궁민은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 준 모습 가운데 외모와 어울리는 다정함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남궁민의 주특기는 역시 악역이다. 자연스레 경계를 풀도록 만드는 느릿느릿한 말투와 웃을 때 곱게 휘어지는 눈을 가진 반면 꼬리가 날카로운 입매에 차가운 웃음이 걸릴 때는 일순 두려운 마음도 든다. 그런 그가 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서 전무후무한 강도의 악랄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재벌2세 남규만으로 분했다.
그의 악역 도전기는 지난 2006년 개봉한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부터 시작된다. 의리에 죽고 사는 조폭 두목 병두(조인성 분)의 친구인 영화감독 민호를 맡은 그는 이 작품에서 처절한 배신극을 만들어냈다. 이후 영화 ‘뷰티풀 선데이’를 비롯해 드라마 ‘부자의 탄생’ ‘내 마음이 들리니’ ‘냄새를 보는 소녀’ 등에서 악역을 소화했다. 이쯤에서 ‘남궁민 악역사’의 흐름을 톺아보자.

# 영화 ‘비열한 거리’(2006)
조직 보스가 됐다는 오랜 친구를 찾아와 영화에 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청하는 민호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그 서슬 퍼런 병두를 무장해제시킬 정도였다. 그런 민호가 이 영화의 악역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궁민이 맡은 민호는 한없이 나약해서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인물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신의 따위는 포기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두렵다. 또 민호는 막상 생과 사의 경계에 선다면 악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입체적 악역이었다.
# 영화 ‘뷰티풀 선데이’ (2007)
남궁민이 ‘비열한 거리’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맡은 악역, 민우는 한 층 더 강렬한 인상이었다. ‘아내를 강간하고 죽인다’는 설정 하나로 더 이상의 부연이 필요하지 않을 터다. 수연(민지혜 분)을 짝사랑하던 민우는 몇 년 뒤 그와 다시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갖는다. 그러나 수연은 우연히 민우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를 떠나려 한다. 민우는 그를 붙잡으려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민우는 강형사(박용우 분)를 찾아가 죄를 고백하는 가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남궁민은 이 작품을 끝으로 입대했다.
# 드라마 ‘부자의 탄생’(2010)
남궁민이 뻔뻔스러운 재벌 캐릭터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은 ‘부자의 탄생’ 속 추운석부터였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 뻔뻔하기 그지 없는 인물이 사랑만큼은 손쉽게 얻지 못하자 답답해 한다. 그에게는 아버지 대부터 오랫동안 재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결핍까지 있다. 운석은 그가 좋아하던 신미(이보영 분)의 아버지 병실까지 찾아가 빈정대는 안하무인이었지만 결국 사랑을 얻기 위해 피아노 연주에 반지까지 선물하고도 차이는 애잔한 모습도 있다. 남궁민은 이 드라마 속에서 추운석의 악한 이면에 숨겨진 어린아이 같은 매력을 완벽히 살려냈다.
#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2015)
‘냄새를 보는 소녀’는 남궁민이 본격 사이코패스 연기를 선보인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권재희는 뛰어난 실력의 스타 셰프이면서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완벽남 캐릭터지만, 동시에 ‘바코드 살인범’이었다는 반전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다정함을 보여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잔혹함까지 드러낸 명연기로 호평받았다. 면도날 들어갈 빈틈 하나 없는 권재희의 강렬한 ‘냄새’는 극의 긴장감을 북돋웠다.
남궁민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권재희 역으로 ‘2015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10년 넘게 상을 못 받았는데 감사하다”며 벅찬 수상 소감을 밝혀 뭉클함을 줬다.
# 드라마 ‘리멤버’(2016)
‘리멤버’의 남규만은 영화 ‘공공의 적’의 조규환(이성재 분),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를 잇는 ‘원래 나쁜 놈’캐릭터다. 특히 조태오와 많이 닮은 점은 재벌2세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돈과 권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지난 13일 방송에서 자신의 차를 추월한 운전자를 막아 세운 뒤 “아줌마, 초보라 죄송하면 다야? 아줌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라며 골프채로 차 앞유리를 마구 깨던 조규만의 살기어린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실컷 분풀이를 한 후에는 매번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해결해 주는 박동호(박성웅 분)에게 전화를 걸어 “박변, 나 사고쳤어. 여기 빨리 와서 처리해”라고 말하기까지. ‘리멤버’의 시청률 고공행진에 일등공신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단연 조규환과 조태오를 능가할 남규만의 활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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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비열한 거리’·‘뷰티풀 선데이’ 스틸컷, 드라마 ‘부자의 탄생’·‘냄새를 보는 소녀’·‘리멤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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