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전제작을 말하기에 앞서 낡은 이분법을 되살려 보자. 드라마는 예술이자 상품이다. 연출가와 작가의 끊임없는 대화로 만들어낸 작품이면서도, 이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없다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시청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하는 드라마의 제작 시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최근 드라마계는 ‘생방송’ 중이었다. 약 4회 정도의 초반 분량을 미리 찍어둔 뒤 방송 시작과 동시에 나머지를 촬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연진의 손에는 ‘쪽대본’이 들려졌고, 충분히 이야기를 숙지할 시간 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상황에 배우들의 불만도 쇄도했다.
‘반(半) 사전제작’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2016년 첫 사전제작 드라마인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이 반갑다. 그러나 사전제작에도 단점은 있다. 시청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사전제작, 그 명과 암을 짚어 보자.
# 명(明) : ‘용두사미’는 없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실시간 피드백에 의존할 경우 당초 작가와 연출가가 구상했던 이야기 진행 방식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든 시청자가 같은 전개를 원하는 것이 아닐진대, 가장 큰 여론이 드라마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제작의 경우는 다르다. 드라마가 ‘산으로 갈’ 걱정은 접어 둬도 좋다는 것이 사전제작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사전제작의 경우 ‘쪽대본’이 나돌 리 없다. 이는 출연진과 제작진이 온전히 작품을 연구하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 중인 한 배우는 과거 “사전제작이 가능하다면 드라마로 복귀할 수도 있다”며 현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 완곡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저 대본을 외우기만도 급급한 상황에서 진짜 ‘웰메이드’ 드라마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요즘 들어 사전제작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 암(暗) : ‘발연기’도 수정 불가
사전제작의 단점은 연기 패턴 등 드라마의 디테일한 부분을 전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글을 쓴 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더라도 불만스러운 곳이 눈에 띈다.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터다. 시청자들의 열띤 요구가 아니더라도 다소 아쉬웠던 점들을 다음 회차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부 시청자들이 ‘치인트’ 속 특정 배우에게 제기한 연기력 논란을 들 수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임에도 해당 프로그램이 이미 거의 모든 촬영을 마친 터라 연기 디렉팅을 새로 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2-3달을 시청자들과 한 호흡으로 달려가야 하는 드라마에서 이들의 원성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기했듯 드라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또 사전제작된 드라마가 이후에 나온 쪽대본 드라마와 주제 및 연출이 중복되더라도 별다르게 손 쓸 도리가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한편 2016년에는 KBS 2TV ‘태양의 후예’와 ‘화랑 : 더 비기닝’·‘함부로 애틋하게’, SBS ‘사임당 the Herstory’를 비롯해 아직 방송사를 결정하지 못한 ‘보보경심 : 려’가 사전제작을 마친 뒤 시청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bestsurplu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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