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폐지설부터 ‘웃찾사’의 부진까지,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을 두고 위기를 맞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많은 생각을 했을 코미디 5인방에게 직접 물어봤다.
다 합쳐 총 경력 약 57년을 자랑하는 박성호, 김재욱, 이종훈, 김원효, 정범균은 오랜 경력만큼이나 까마득한 후배들을 다수 두고 있다. 여전히 코미디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연구할 만큼 큰 애정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 미안함은 가지고 있는 이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코미디 프로그램의 예전 같지 않은 인기, 어떻게 생각하나.
“안타깝기는 한데 다시 한 번 부흥기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때를 대비해서 저희가 재료를 쌓아놓는다고 할까요? 공연도 공연이지만, 새로운 것들을 얻기 위해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영감을 얻고 소재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축적해서 이후 코미디가 다시 부흥할 수 있게 말이에요. 저희 같은 경우는 누릴 걸 다 누렸다고 생각하지만, 후배들은 그 영광의 맛을 못 봤잖아요. 아끼는 후배들이 다시 한 번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개그를 할 수 있도록, 부흥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성호)
“매번 숙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희가 쇼그맨 공연을 만든 지 4개월 밖에 안됐어요. 그런데도 문제점이 생기고 하는데, ‘개그콘서트’는 10년이 넘었잖아요. 당연히 여러 문제점들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걸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너무 뭐 하나가 없다는 점이에요. 코너만 바뀔 뿐이지, 강렬한 뭔가가 없어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고 제작진도 찾아야 해요.” (김원효)
“저희 와이프가 ‘뮤직뱅크’를 보면서 ‘저기 개그콘서트 녹화하는 스튜디오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보니까 똑같은 스튜디오인데 스케일이나 조명이 다르더라고요. ’개그콘서트‘도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선봉장이 나타나면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10년 동안 그대로 유지해온 느낌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개그콘서트’도 할리우드 쇼처럼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밑에서 툭 튀어나오거나 와이어를 탄다거나. 볼거리 많아지는 이 시점에 시청자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김재욱)
- 희극인으로서 가장 힘든 순간과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
“가장 힘든 순간은 내가 짠 아이디어를 뺏겼을 때에요. 심지어 그 코너가 잘 됐을 때는 엄청나게 힘들죠. 그 코너로 몇 억 씩 벌고 CF 찍고, 저를 가리켜서 ‘쟤는 왜 나왔어 병풍이야’라는 댓글을 볼 때도 힘들어요. 아이디어는 내가 짠 건데.” (이종훈)
“저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녹화 때문에 못 갔어요. 그 때 너무 죄송했죠. ‘이게 맞는 건가 내 가족도 못 챙기고 있는데’라고 생각했어요. 희극인으로서 좋은 점은 이 직업 덕분에 결혼도 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죠.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 TV로 보던 사람(박성호)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 (정범균)
“힘들었을 때는 난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암담할 때에요. 그럴 때는 힘들다기 보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극복해서 웃음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요. 가장 좋을 때는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할 때죠.” (박성호)
“영화는 한 편 나오면 하나의 작품으로 남지 않잖아요. 그런데 개그프로그램은 처음에 새 코너가 나오면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욕을 해요. 그런 현실이 씁쓸하더라고요. 큰 영광 뒤 나중에는 ‘수고했다’라는 말도 할 수 있는데, ‘아직도 하고 있냐. 버티고 있냐. 내려라’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좀 힘들었었어요.” (김원효)
재욱- “심지어 가족들도 ‘아직도 하냐’라고 해요. 저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내리라 마라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도 감정노동자라 힘들 때 웃겨야 하니까 힘들어요. 개그맨뿐만 아니라 무대에 오르는 가수, 연예인들도 똑같을 걸요? 마음이 안 좋은데 무대에서 바보짓 하고 있으면 좀 그렇죠. 제 동생이 몸이 안 좋을 때 녹화에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그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마음이 이상했어요. 좋은 점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는 힘든 점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건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이 직업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니까. 그래도 얼굴 알려져서 음식점 가면 서비스 줘서 기분 좋아요. 가수나 배우는 멋있지만 약간 다가가기 어렵잖아요. 저희는 아이들이 똥침하고 도망가기도 해요. 어디가도 편하게 대해주시는 것 같아요.” (김재욱)
-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 중 눈 여겨 보고 있는 사람이 있나.
“솔직히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그 와중에는 송영길이요.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이종훈)
“잘 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송필근이요. 같이 해보면서 느낀 건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더 잘 됐으면 좋겠고, 잘 될 것 같아요.” (정범균)
“류정남이요. 제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라고 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안 된 사람이에요(웃음). 나중에 분명히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박성호)
“이수지요. 개그만 놓고 얘기할 순 없어요. 잘하고 있지만 안타깝죠. 박나래나 이국주처럼 끼가 많아서 버라이어티 쪽으로 가는 후배들이 많아졌잖아요. ‘개콘’에서만 뜨고 지고하면 그것밖에 안 돼요. 치고 나가서 잘할 수 있는데 기회가 안 닿아서 그런건지...미리 준비해서 잘 해줬으면 좋겠어요.”
-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에 못 나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착해서 그래요. 심성이 여려서...버라이어티 나가면 누군가를 배려해주고 그러지 않아요. 개그맨들이 다 착해서 그런데 가면 낯가림도 심하고. 옆에 아이돌한테 다 줘요(이종훈). 지금 잘 나가는 애들이 못 됐다는 건 아니고 피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박성호)
“요즘 아이돌은 몇몇 겪어봤는데 아예 인사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더라고요. 매니저가 시킨대요.” (김원효)
“선배들 있으니까 막 까불려고 해도 저희 개그맨은 기수가 정확하잖아요. 가수들은 예를 들어 프로듀서인 JYP한테도 ‘형’이라고 하는데 신기하더라고요. 나이차이 많이 나는데도. 저희도 신경 안 쓰고 막 던지고 해야 되는데 그게 안돼요.” (김재욱)
- 박성호는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전성기는 언제인가.
“전성기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은 저도 보여드릴 게 있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제 3의, 제 4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인생 개그는 ‘ing’인 거죠. 돌이켜보면 몇 번 안타를 친 게 있긴 했는데 그걸 전성기라고 생각 안 해요. 현실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나아갈 거에요.” (박성호) / jsy901104@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