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단 2회 남겨둔 시점에서 여전히 덕선 남편의 정체는 드러나지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OSEN 기자 3명은 정환(류준열), 택(박보검), 동룡(이동휘)을 앞세워 이들이 현재 덕선의 진짜 남편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각각의 사심을 가득 채워 풀어내봤습니다. -편집자주
정환과 택이를 놓고 '누가 덕선의 현재 남편인가'를 부지런히 토론하는 분들에게 이제와서 살짝 귀띔해주고 싶습니다. 사실은 '어남동'(어쩌면 남편은 동룡)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도저히 믿기 힘든 그 마음, 충분히 공감하고, 또 존중합니다. 청천벽력 같겠죠. 드라마 초반부터 아랫집 덕선과 촘촘하게 얽힌 에피소드로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에 차근차근 무게를 더했던 정환이나, 수줍던 모습을 떨쳐내고 중후반 무서운 다크호스로 떠올라 이제는 강력한 남편후보가 된 택이, 누구라도 이 둘 중 한 명이 남편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주 당연한 현상입니다. 비주얼로 봐도(이동휘씨 죄송합니다), 비중으로 봐도, 두 사람 중 한 명이 덕선의 현재 남편이 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죠.
그것은 아마도 이전 시리즈였던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로 학습된 탓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츤데레' 계보를 잇는 류준열이 덕선의 남편으로 끝맺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은 '응답하라'의 세 번째 시리즈이며, 이미 덕선의 첫사랑이었던 선우(고경표)가 언니 보라(류혜영)와 맺어지는 순간, '응답'의 전형적인 틀은 철저하게 부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시청자의 허를 찌르기 위한 고민을 거듭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쌍문동 5인방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했던 이는 비단 정환과 택이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눈치 100단, 동네의 모든 일들을 척척 다 알고 있던, 모두의 듬직한 카운셀러 동룡(이동휘) 역시 이미 오래전 덕선을 마음에 품고 있었음에도 차마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해준 따뜻한 미역국이 그리워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소심한 가출로 대신하는 그런 아이였거든요. 그런 동룡은 정환과 택이 덕선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찌감치 자신의 마음을 침착하게 억눌렀던 거죠.
하지만 기억해보세요. 드라마 초반 쌍문동 절친 남자들이 모여있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요즘 덕선이 예쁘지 않냐'고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던 동룡을 말입니다. 흔히 사춘기 시절의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호감을 먼저 표현하는 법입니다. 무심한듯, 진심을 섞어서요. 동룡이도 그래습니다.
감정을 그렇게 꾹 눌러가며 지켜만 보던 동룡이 참지 못하고 잠시 덕선의 곁에 등장했던 장면도 기억하시나요. '금사빠' 덕선이 자신의 마음을 당최 모르고 갈팡질팡하며 고민에 휩싸이자, 나를 누가 좋아하느냐가 아닌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를 살피라는 조언이었죠. 덕선의 성장을 기다려주고, 옆에서 제대로 끝도 없이 보듬어준 사람이 바로 이렇듯, 따뜻한 동룡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눌러왔던 본심도 아주 잠시 튀어 나왔습니다. "택이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요. 물론 덕선은 곧바로 택이를 꼽았습니다. 실망한 동룡은 "난 싫어?"라고 되묻죠. 진심을 다한 동룡의 표정. 이는 아마도 '응팔'을 통틀어 가장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동룡은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혜리에게 해줬던 "누가 너를 좋아하는 것 말고, 네가 누굴 좋아할 수도 있는 거야"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되뇌인 말이기도 했거든요. 동룡의 마음은 이미 덕선을 향해있었고, 동룡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동룡은 덕선의 유일한 쉼터 같은 사람이었어요. 같이 놀아도 전교 1등을 하는 정환과 선우, 젓가락질 하나 못하지만 바둑을 기똥차게 하는 택이와는 묘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자격지심도 싹틀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동룡과는 공부 면에서도, 끈끈한 밑바닥 유대감, 동료애를 지녔음을 확신합니다. 오붓한(?) 둘만의 재수 과정도 이를 십분 반영한 결과물이죠.
동룡은 우울한 덕선의 손을 잡아 밥상머리에 앉히기도, 버스에서 덕선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도, 또한 그렇게 좋아하는 파르페를 '처음 먹어 본다'는 덕선에게 선뜻 양보하기도 합니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갖고 싶다고 소방차 춤을 연습하던 덕선을 비웃다가도, 친구들을 데려와 대신 무대를 꾸미 것도 역시 동룡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신만을 위함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성숙한 사랑을 실천했던 것은 동룡 뿐이었죠.
신원호 PD는 방송이 시작하기 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로맨스가 없을 수는 없죠. 지나간 시절이라는 코드와 첫사랑은 떼놓을 수 없는 코드이고, 저와 이우정 작가가 너무도 좋아하는 코드입니다"라고요. 그런데 쌍문동 5인방 중 왜 유독 이렇게 동룡의 로맨스는 없던 걸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꾸준히도 덕선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으니깐요. 결국 성인이 된 덕선은 그런 마음을 알고 동룡과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겁니다.
어딘가의 SNS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덕선 부부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글이요. 분명 남편 때문일 것만 같은데, 40대가 되어버린 천재 바둑기사였던 택이나, 공군사관학교 출신 정환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좀 애매하긴 했습니다. 오히려 '유느님' 유재석을 모델로 했다는 동룡이라면 이 모든 부분에 속시원한 답변이 가능하죠.
본래 연애에 서툴러 힘들어하는 이성 친구 곁에서 따뜻하게 감싸주고 고민을 오래 들어주던 친구와 맺어지는 확률은 의외로 현실에서 꽤 높습니다.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앞서 12일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 게스트로 출연한 이적은 '덕선의 남편이 누가 될 것 같느냐'라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가 불쑥 "의외로 동룡이 아닐까"라고 남겼죠. 무려 '응팔' OST를 불러, 드라마 제작진에 한 발 다가선, 가수의 예측입니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오랜 고민을 거듭했겠죠. 3번째 시즌이나 들어선 '응답하라' 시리즈가 비슷한 패턴을 자꾸만 반복하는 게 아닐까, 자기 복제는 아닐까 하는. 결국 참으로 어려운 결심을 한 신원호 PD는 당시 간담회 때 "이번 시즌은 망할 거다"라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왜일까요. 선우→정환→택으로 마음을 옮겨가던 덕선이 결국에는 동룡에게 정착해 맺어지는 결말은, 아무래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덕선에게 진짜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의 곁에서 가장 그를 이해해줄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괜찮아요. 동룡의 로맨스를 풀어내기엔 설명이 다소 늦어졌지만, 아직 2회가 남아있잖아요. 동룡에게 적어도 동등한 기회는 줘봐야죠. 동룡의 절절한 그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에 울려퍼집니다.
"덕선아 어디니, 내 말 들리니?" / gato@osen.co.kr
[사진]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