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살인 누명을 쓴 남자와 그의 아들을 구하려 힘쓰던 정의의 변호사가 돌연 재벌2세의 ‘사냥개’가 돼 지키려던 이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 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 속 박동호(박성웅 분) 이야기다. 그런 박동호가 본의 아니게 배신했던 서진우(유승호 분) 곁에 다시 서려고 한다.
박동호는 지난 14일 방송된 ‘리멤버’에서 서진우에게 진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4년 전 발생한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 당시 진범 남규만(남궁민 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수가 된 서재혁(전광렬 분)의 재심 변론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과거 서진우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재혁의 변론을 맡았던 박동호는 남규만의 사주를 받고 재판에서 일부러 패배한다. 박동호의 이 같은 선택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같이 모시던 석주일(이원종 분)의 안위를 위함이었다. 서진우가 서재혁을 지키고 싶었듯, 박동호 역시 석주일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사형수가 된 서재혁과 복수심에 불타 변호사가 된 서진우를 볼 때마다 박동호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박동호도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박동호와 박동호의 아버지가 탄 트럭이 경차를 들이받았다. 한 가족의 절반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수사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신호위반으로 종결됐었다. 박동호는 “자식을 태우고 음주운전하는 아버지가 어딨나”라며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줄 리 없었다. 그래서 박동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는 돈이나 힘이 필요했다.
우연히 이 사고에 대해 상기하게 된 박동호는 당시 사망자가 서재혁의 막내아들과 아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였다. 어찌 보면 서재혁과 서진우 가족의 커다란 불행에는 항상 박동호가 연관돼 있었다. 그는 이 깨우침을 계기로 서진우의 편에 서기로 한다. “내가 끝내지 못한 것, 이번에 네가 끝냈으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가 힘겨운 전향에 성공하기 직전 서재혁은 사망한다. 모든 것을 잃은 서진우는 빈소에 나타난 박동호의 멱살을 잡으면서도 그에게 기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박동호 역시 서진우를 토닥이며 속울음을 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두 사람이 눈물로 마주한 이 장면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이 드라마의 새로운 출발을 고하고 있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 드라마에 붙은 ‘아들의 전쟁’이라는 부제의 의미도 뚜렷해져 가고 있다. 아버지 혹은 아버지와 유사한 인물의 영향으로 얽히고설킨 아들들이 자신의 목을 내걸고 대결한다. 각자 지키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서재혁과 서진우, 박동호를 이용할 수밖에 없던 남규만. 남규만을 제거해야만 아버지의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서진우. 서진우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의를 내버리지 않으면 석주일을 지킬 수 없는 박동호까지. 참 묘하고도 얄궃은 운명이다.
박동호는 서진우의 아버지가 돼 줄 수 있을까. 결코 서재혁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남규만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카드를 지닌 박동호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