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문채원에게 '예쁨'을 주고 '내숭'을 뺏었다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6.01.16 10: 29

 이미지로 아는 것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참 많이 다르다. 배우 문채원도 그랬다. 여성스럽고 예쁘기만 할 것 같던 이 여배우는 연기나 일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고, 무엇을 물어도 깊이있는 대답으로 질문자를 감동시켰다. '예쁜 척'이라고는 몰랐다. 모든 대답에는 진지한 고민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고, 그런 면에서 완벽주의자적 기질도 엿보였다. 단, 나긋나긋 특유의 느린 말투 만큼은 TV 속에서
본 모습과 똑같았다.
 

문채원은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철벽녀' 수정 역을 맡았다. 수정은 업무차 부산으로 가는 KTX 옆자리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맹공남' 재현(유연석 분)을 만나고, 그로부터 적극적인 대시를 받게 되면서 흔들린다. 10년 사귄 오래된 연인이 있는 그는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여자다.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 캐릭터에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어요. 어두운 것도 있고, 밝은 것도 있죠. 밝은 캐릭터 중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친구한테는 매력을 못 느꼈어요. 그래서 매력점을 넣으려고 하는 게 포인트였죠. 애초에 대본을 읽었을 때 재환이 바람둥이고, 나이스 하고 이런 거였지, 수정이에 대해서는 자극적인 멘트를 한다던가, 괄호치고 '귀엽게', 이런 것도 없었어요. 특별한 지시사항이 없었던 거죠. 보면 되게 심심하고 답답하고 보수적인 캐릭터였죠. 제가 맡은 역할 중 제일 평범할 걸요? 제일 평범하고 영화, 드라마통틀어 가장 대한민국에 많을 수 있는 여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재미없는 여자를 결국,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뭘까? 문채원은 '평범한' 역할을 맡는 것에 의의를 뒀다고 했다. 
"오히려 평범한 역할을 맡은 것에 의미를 두고, 그런 인물을 어떻게 살려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되게 보수적이고 갇혀 있지만, 괜히 도도한 면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수정을 생각해 볼 때, 본인이 되게 별로라 생각할까? 나 정도면 괜찮지 뭐, 하는데 어쩌다 보니 한 사람이랑 오래 연애하고 재미없는 삶을 산 사람일까? 할 때, 후자 쪽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안 쓸 것 같은 표정을 쓸 수 있는 부분을 넣는다던가, 이런 것들을 요만큼, 요만큼 아주 조금씩 넣었어요."
문채원은 VIP 시사회가 끝나고, 영화평 때문에 엄마와 싸웠다는 얘기를 해 웃음을 줬다. 엄마에게 "재미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덤덤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는 것. 
"끝나고 엄마의 얼굴을 못 뵀어요. 끝나고 전화를 해서 '재밌었어?' 했더니 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엄마, 재밌었냐고. 영화 어땠냐니깐 왜 딴 소리야.' 이랬더니 '영화 뭐' 이러세요. 그래서 다시 '재밌었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너무 솔직하게 '아니'라고 하시는거예요. '알았어. 끊어봐'하고 엄마한테 문자를 했어요. 서운하다고요. 솔직한 것도 좋은데, 너무 목소리에 힘을 빼고, 너무 그렇게 얘기하니까 보람도 안 느껴지고. 너무 솔직하게 얘기해서 서운하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얘기해주시더라고요. '네가 고생해서 찍었는데, 그걸 알면서 보니 유쾌해지지 않더라. 안쓰럽더라.'고요."
여전히 어머니는 딸의 작품 중 KBS 2TV '공주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를 최고로 꼽는다고 한다. 문채원은 "아마도 영화는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어른이시니까, 조금 더 그런 장르가 좋으시겠죠"라고 말했다. 
영화는 극 중 수정과 재현이 하루 동안 쌓아가는 감정에 집중한다. 그래서 재밌는 일도 생기는데, 여주인공이 영화 내내 거의 단벌로만 등장하는 점이다. 하지만 "예쁜 옷을 못 입어 아쉽지 않았느냐"는 말에 문채원은 "'아싸, 편하겠다'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저는 사실 한 벌로 가서 좋았어요. 왜냐하면 '오늘의 연애' 때 옷을 많이, 기억 못 하셔도 옷이 많았어요. 기상 캐스터 하는 것도 있고, 순간 넘어가는 신 때문에 옷을 바꿔입고 이런 게 많았는데, 사실은 그런 걸 안 좋아해서요. 옷 한 벌로 하는 영화가 더 좋아요. 이렇게 한 벌로 한복이든 뭐든 한 벌로.(웃음) 보는 분은 재미 없겠죠. 그렇지만 저는 사실 좋았고, '아싸 편하겠다' 싶었어요."
문채원이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는 '소심함을 개선하자'다. 로맨틱한 순간이 왔을 때 소심함을 벗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의 연애 스타일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도 되게 소심해서요. 드라마나 이런 데선 제가 먼저 고백하는데, 실제론 못 해요.(웃음) 일상에서도 변화가 있겠지, 해도 없어요. 그런 작품을 찍고 나서도 용기가 안 나고, 사귀자는 얘기가 아니라 '보고싶다'는 얘기를 할 때도 많은 생각을 해요. 이러면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여자가 이러면 덜 매력적일까? 괜히 이것 때문에 내가 나중에 힘들까? 유교사상도 그렇고 많은 게 있어서 결국엔 안 하죠. 상대가 저한테 비슷한 마음이 있다면 보자고 해야 봐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러다보니 현실적으로 연애가 더 어려워요. 영화를 찍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소심함을 조금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였어요. 10년 연애를 질질 끈 것도 소심함 때문이죠. 로맨틱한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못 누린 것도 소심함 때
문이에요. 우리가 소심해요."
최근 문채원은 평생 자르지 않았던 긴 머리를 잘랐다. 그야말로 생애 첫 단발이다. MBC 드라마 '굿바이미스터블랙'을 위한 시도다. 팬들 사이에서는 데뷔 후 처음 본 과감한, 그래서 낯선 쇼트 커트가 혼란스러운 반응을 낳았으나 정작 문채원은 덤덤했다. "어떻게 다 맞추겠느냐. 머리는 또 자란다"는 소탈한 대답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너무 긴 머리를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해요. 제 모습에, 머리에, 만족하면서 산 시간이 거의 없는 거죠. 긴 머리를 싫어하니까요. 다른 사람의 긴머리는 괜찮은데, 제 스스로는 싫어서요. 자르니까 별로다, 안 예쁘다, 해도 저는 자르고 싶었어서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어요. 작품에서 기르는 것 보다 자르는 게 좋아서 자른 것 뿐이니 괜찮습니다."
문채원은 거기에 자신은 그다지 "'러블리'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저 그렇게 '러블리' 하지 않아요. 집에선 목석 같다는 얘길 더 많이 들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아마 동창들은 학창시절 끼 있는 친구가 아닌 저 같은 스타일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이상할 거에요. '문채원이 우리 학교 문채원이야?'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네요.(웃음) 저는 사실 차라리 혼자서 미술 같은 작업을 하는 게 더 편해요. 중간 체크만 받고요. 많은 사람 앞에서 협동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신경 쓰는게 힘들고 어려워요. 그렇게 '러블리' 하지도 않고...그런데 뭐, 목석 같은 것만 또 하고 살 수 없으니까 자기 개발을 해보는 거지요."
지난해 서른을 보냈다. 지난해 서른을 맞이하는 심정을 묻는 질문에는 '크게 없다'고 했었던 문채원. 서른을 지나 본 소감을 물으니 "그냥 아듀다. 잘가라, 나의 서른이여"라는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듀에요. '잘가라. 나의 서른이여, 얼른 가라'(웃음) 싫었다는 것 보다는 예상치 못했던 일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해가 24~25살 때 월드컵 그 때 한 번이랑 작년이었어요. 작년에 일이 없어 힘든 것도 아니고, 그거야 제가 선택한 거니까. 그게 힘들었던 게 아니라 얘기할 수 없지만 힘든 부분들이 있었어요. 되게 어렵더라고요. 왜 예기치 못했던 방향에서 난관을 만나게 되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죠. 빨리 가버려라. 지난해 11월, 12월에 들어가면서 저도 그 한 해 있었던 일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이 일은 걔가 그랬어' 그러는데, 한 해가 지나면서 제가 스스로 생각할 때도 곱씹기가 좀 뭐하더라고요. '지나갔잖아.'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eujenej@osen.co.kr
[사진] 엠에스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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