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지난 2010년, 모두를 순식간에 '멘붕 상태'에 빠뜨렸던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신이다. 신세경의 이 대사와 함께 화면은 주인공들의 죽음을 암시하듯 흑백으로 전환됐다.
약 5년이 흐른 지금,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를 지지하던 팬들은 이 대사를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되살렸다. 지난 15일 방송된 '응팔' 19회가 덕선의 '남편 찾기'가 정환(류준열)을 비껴가 택(박보검)이로 결정됐기 때문. 방송 직후, 정환을 향한 격려와 위로가 웹과 SNS를 뒤덮었다.
정환(류준열 분)과 택이의 남편 증거들이 번갈아 등장했지만, 극 초반 무게가 실렸던 정환이 다소 허무하게 오랜 시간의 짝사랑을 정리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이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택은 덕선과의 키스에 앞서 사천까지 정환을 찾아가 그의 마음을 확인시켰다. 정환은 옛날일이라며 "혜리를 얼른 잡아라"라고 응원까지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18회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받았던 '피앙세 반지 고백'신은, 이를 더 허탈하게 만들었던 역대급 허망 고백신으로 남게 됐다.
당시 정환이 뱉었던 대사 하나하나는 덕선을 향한 진심이 묻어났고, 이제까지 전 회차를 되돌려보는 기분으로 모두를 추억에 젖게 했다. 앞에 있는 덕선 역시 그때를 분명 떠올리는 감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원래 졸업할 때 주려고 했는데, 이제 준다. 나 너 좋아해. 좋아한다고, 야, 내가 너 때문에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알아?"로 시작하더니 결국 "옛날부터 얘기하고 싶었는데, 나 너 진짜 좋아. 사랑해"로 이어졌던 이 고백은 정말 그야말로 답답했던 속이 한 번에 뻥 뚫리는 그런 사이다 고백이었다.
마무리가 문제였다. 동룡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됐냐 븅신아?"라고 앞선 고백을 한 순간에 개그로 승화시킨 것. 덕선이 소리가 나는 문쪽으로 자꾸 고개를 돌려 택이를 확인하는 모습은 정환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저 "됐냐 븅신아?"를 말하기 직전 "사랑해"로 고백을 마무리 했더라면, 그대로 시간이 멈췄더라며 하는 게 '어남류'들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정환의 거처다. 이미 수많은 복선으로 '어남류'를 예측했던 이들이 납득할 만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오랜 짝사랑을 장난스러운 고백으로 날려버리는 상황을 연출하더니, 가장 친한 친구와 짝사랑녀의 연애와 결혼까지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의 그다.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언제나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러했듯, 또 다른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해주는 상황 전개. 그래봤자 아쉬움이 남겠지만, 짝도 없이 택과 덕선의 결혼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결말보다야 낫다.
예상못한 빠른 '남편 찾기' 결말에, 후폭풍은 상당하다. 드라마 속 정환을 위로하고픈 이들은 입을 모아 외치고 있다.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이고픈 심정으로 말이다.
'정환아 어디니, 내 말 들리니?' / gato@osen.co.kr
[사진] '응답하라 1988', '지붕뚫고 하이킥'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