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걸스데이 혜리는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했다. 결국 '혜리는 안 돼'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게 됐다.
16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의 주인공 성덕선 역을 꿰찬 혜리는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다. 앞서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응답하라 1994'의 고아라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만 혜리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높아진 인기 만큼 캐스팅 소식에서부터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첫 회 시작에서부터 혜리는 여론을 돌려놨다. 심지어 '응답하라' 시리즈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평을 듣기까지. 시리즈의 엄마 이일화 역시 혜리를 두고 '역대 가장 귀여운 딸'이라고 평했던 바다.
혜리가 분한 덕선이는 예쁘다는 말은 곧잘 듣지만 외모로 부각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특히 클로즈업 된 혜리에게서는 '여배우인데 과감하다'란 반응도 곧잘 나왔다. 특히 그가 거울을 보고 망가지는(?) 표정을 짓는 장면은 일면 놀랍기까지. 극 중 덕선의 언니 보라(류혜영)가 덕선에게 "너는 뭐 예쁘냐. 코는 남산만 해가지고"라는 대사가 있듯 큰 코가 덕선의 비주얼 포인트이기도 했다. 실제로 '응답하라 1988'을 본 사람들 중에는 혜리가 코 분장을 한 것이냐는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실제로 자신의 코에 대한 불만을 이전 방송에서도 종종 드러내기도 했던 혜리는 드라마에서 이런 단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확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얻었다. 시청자들이 덕선에게 바라는 건 그림같이 예쁜 외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노력은 혜리에게 '그래도 예쁘다'란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왔다.
가장 중요한 연기력 역시 만족감을 안겼다. 시리즈 처음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은 혜리는 이 드라마에서 사실 기술적인 연기라기 보다는 날 것에 가까운 생생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 점은 혜리의 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둘째의 설움을 폭발하는 장면, (걸그룹임에도 불구하고)몸치처럼 코믹 댄스를 추는 장면 등 에너지를 분출하는 연기 외에도 미묘한 떨림, 감정의 혼란과 변화 등 내면 연기를 본인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차분하게 해냈다는 평이다.
혜리는 따로 강사를 두거나 훈련을 받는 방식으로 연기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닌, 제작진과의 소통을 통해 체득했다는 전언. 신원호 PD의 디렉션이 이런 성공에 주효한 역할을 했겠지만 혜리의 감각이 없었다면 사랑스러운 덕선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MBC '일밤-진짜사나이'에 출연해 애교로 CF를 점령한 혜리가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유쾌 털털한 이미지를 더하며 가수를 넘어 연기자로서 뻗어나가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등장했듯 인생은 타이밍인데 기가막힌 타이밍들을 날카롭게 잡아채는 혜리의 능력이 놀랍다. 앞으로 배우 혜리에게는 '디렉션의 힘이 다가 아니었다'를 보여줄 또 다른 인생작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nyc@osen.co.kr
[사진] tvN, '응답하라 1988'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