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유아인이 확 변했다.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야망에 스승으로 삼았던 김명민과 조용히 등을 돌리며 자신의 세력 구축에 나섰다.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유아인의 한 마디는 무려 30회 가까이 그가 끌고 온 이방원의 무시무시한 야심이 담겨 있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유아인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조선의 기틀을 세운 여섯 용의 이야기를 다루는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주인공 이방원을 연기한다. 이 드라마는 고려 말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탄에 빠진 백성들의 아픔, 새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과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 속에 정치 갈등과 사랑, 권력욕 등을 담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는 50회라는 긴 흐름을 갖고 있어 무수히 많은 인물들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이방원의 변화를 예상하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방원이 권력에 대한 야망이 크다는 것은 홍인방(전노민 분)의 악담에서부터 드러났다. 홍인방은 권력에 미쳐 날뛰었는데 언제나 이방원에게 손을 잡자고 이야기를 했고, 서로가 닮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이방원을 혼란에 빠뜨렸다.
유학을 섬기는 유자이나 정도를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동안 이방원이 고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 돌발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순서를 차근차근 지키는 것보다는 전복을 꿈꾸는 사람, 대의를 위해서는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사람, 민초들이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여자인 분이(신세경 분)가 민초들의 중심에 서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 바로 이방원이 30회 동안 시청자들에게 드러낸 섬뜩한 면모였다.
그리고 곪았던 상처가 터지듯 예견된 이방원의 폭주는 시작됐다. 지난 18일 방송된 31회를 기점으로 이방원은 신권정치를 꿈꾸는 정도전(김명민 분)의 눈을 속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병을 두고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무명과 손을 잡은 것. 물론 정도전에게는 무명을 잡기 위한 덫이라고 속였지만 이미 정도전이 그리는 새 나라에 자신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방원은 열병을 심하게 앓고 아버지 이성계로부터 독립해 후일을 도모했다.
많이 알려진대로 이방원은 조선이 건국한 후 정도전과 대립각을 세우고 동생들을 죽인 후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강력한 왕권정치를 희망하고 철혈군주였던 태종 이방원은 2016년 겨울 ‘연기 천재’라는 수식어가 있는 유아인을 만나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가 조선 건국이라는 큰 뿌리 속에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내세웠는데, 그 속에서 가장 큰 나뭇가지는 이방원의 변화였다. 제작진은 이방원이 각성하는 31회를 위해 탄탄하게 복선을 깔아왔고, 시청자들은 정도전과 함께 하나 언제든 꿈틀대는 야심을 주체하지 못할 이방원을 불안하고 흥미롭게 지켜봤다. 31회에서 정도전에게 거짓을 고하고 “이제 내가 아니니까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유아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소름 끼치는 순간이 됐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지난 30회 동안 유아인이 이방원의 미세한 변화를 연기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장면은 드라마를 이방원 중심으로 확 돌리는 강력한 지점이자,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는 유아인의 연기 설정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들었다. 유아인이 아니었다면, 이 긴 흐름 동안 감정의 선을 차곡차곡 연결해서 올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유아인은 이방원이라는 인물이 왜 변화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득력을 높였다. 다소 느린 전개일 수 있지만 워낙 탄탄하게 이야기를 끌고 오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아인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개연성인 배우가 만나 ‘육룡이 나르샤’가 오늘도 안방극장을 꽉 잡고 있다.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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