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킬방원'의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유아인은 각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서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내보이며 천천히 조금씩 변화를 시작했다. 그만의 섬세한 내면연기는 시청자들을 충분히 설득시켰다. 그리고 그가 흘린 눈물은 앞으로의 무서운 변화를 예고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철혈 군주 이방원(유아인 분)을 중심으로 한 여섯 인물의 야망과 성공 스토리를 다룬 팩션 사극으로, 이방원의 변화를 통해 본격 2막을 연다고 예고된 바 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시청자들은 이방원이 자신과 뜻이 다른 정몽주(김의성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을 죽이고 훗날 태종이 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방송 초반부터 시청자들은 '킬방원'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특히 이방원과 정몽주가 보여줄 '하여가'와 '단심가'는 KBS '정도전'에서 그랬듯, 눈을 뗄 수 없는 명장면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일었다.
그리고 지난 18일 방송된 '육룡이 나르샤' 31회에서 유아인은 혼란에 빠진 이방원의 심리 상태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을 제대로 만족시켰다. 그토록 믿었던 정도전의 진짜 뜻을 알게 된 후 꿈틀거리는 '폭두' 본능을 그대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지략을 펼치며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날 방송 말미 이방원이 분이(신세경 분)와 눈싸움을 한 뒤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유아인의 탄탄한 연기 내공을 더욱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분이는 이방원이 진심 다해 사랑한 정인이자 순수한 성정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방원은 변화의 시작점에서 마지막으로 분이를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유아인이 흘린 눈물은 그간 수없이 고민을 해야 했던 이방원이 얼마나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물인지를 드러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으로 인한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변할 수밖에 없기에 괴로워해야만 했던 이방원을 너무나 현실감 있게 그려낸 것.
이제 아이가 아니라며 상투를 틀고 분가를 하며 사병을 키우기 시작하는 등 하나씩 진중하게 자신의 계획을 실천해나가는 이방원의 강인한 모습 뒤 동지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개혁을 도모했던 순수 청년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순간이었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