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여행은 쉼표다. 치밀하게 짜 놓은 계획에 따라 시간 단위로 움직이는 미션 수행 류의 여행도 있지만, 발이 닿는대로 흘러가듯 즐기는 여행도 있다. 어떤 것이 여행의 정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tvN ‘꽃보다 청춘 ICELAND’(이하 꽃청춘)는 후자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쉼표’가 되고 있다.
‘꽃청춘’의 포스톤즈(정상훈 조정석 정우 강하늘)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당일 숙소를 나서면서 세워졌고, 그마저도 진행 과정에서 차질을 빚은 경우가 많았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곳까지 왔고, 현지에서 좀 비벼 보려(?) 하면 말이 안 통하고, 편하게 지내려 하니 돈이 없었다.
TV로 보기에 이들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거의 변수로만 이뤄진 여행이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포스톤즈에게 이러한 상황들은 변수가 되지 못했던 듯하다. 영어가 안 되면 한국말을 쓰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맛만 보며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종일관 즐거워했다. 빈틈 없는 여행보다 틈을 찾는 여행을 즐기고 있던 이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쉼표’가 되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꽃청춘’의 포스톤즈가 보여준 ‘빈틈’들을 찾아 봤다.
# 언어의 장벽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이후 드러난 네 명의 영어 실력은 그야말로 ‘초딩 수준’. 초반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한 모습에 우려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상쇄하는 바디랭귀지 달인들이 있었으니, 정우와 정상훈이 보여 준 ‘몸의 대화’는 아이슬란드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통할 법 했다. 자신감과 뻔뻔함은 또 어찌나 대단하던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할 배짱이었다.
포스톤즈의 브레인 조정석은 스마트폰의 번역기 어플을 이용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아이슬란드에서 쓰는 말까지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포스톤즈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역시 기계는 믿을 것이 못 되어 중요한 순간에만 먹통이 되거나 엉뚱한 번역을 내놓아 웃음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 예는 ‘핫도그 세 개’를 ‘Hotdog World(세계)’로 바꾼 것이었다.
# 텅 빈 호주머니
‘꽃청춘’ 제작진들이 출연자 네 명에게 준 용돈은 한화로 약 300만원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아이슬란드의 물가를 버티기엔 역부족일 터였다. 그래서 포스톤즈는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소녀가 화려한 쇼윈도 안의 물건들을 추운 밖에서 바라보듯 분위기를 즐기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특히 레이캬비크의 ‘불금’을 즐길 때 밤 11시에도 선크림을 바르며 치장할 정도로 들뜬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돈이 없어서 밖에서 놀고 있다”며 스트리트 댄스를 선보이는 장면이 폭소를 자아냈다. 또 막무가내로 아이슬란드까지 끌려 온 막내 하늘의 신발을 사기 위해 벼룩시장을 이용하는 알뜰함에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기어이 해낸 에누리 장면도 그들이 보여준 유쾌한 ‘빈틈’이었다.
# 실패는 필수, 운은 옵션
‘꽃보다’ 시리즈 가운데서도 아이슬란드 여행기에는 유독 실패의 순간이 많았다. 낮이 짧고 밤이 길며, 한 번 눈이 내렸다 하면 폭풍처럼 쏟아지는 등 원체 날씨의 압박이 큰 탓이었다. 돈이 없는 포스톤즈가 걷기라도 할 요량이면 추위의 습격이 시작됐다. 목적지를 향해 반쯤 가고 있는 와중에도 차를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깐깐하게 굴었을 제작진도 이들의 회차에 전혀 토를 달지 않을 정도였다.
실패한 적도 많았지만 포스톤즈에게는 이를 넘는 ‘운빨’이 있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란 속담이 꼭 어울리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숙소를 구할 때 이들의 운은 절정에 달했다. 매일 숙소를 나옴과 동시에 다른 숙소를 예약해야 했던 상황에서, 포스톤즈는 매번 실수를 했지만 매번 숙소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당일 숙박 시간에 임박해서야 어렵게 잡았다면 숙소의 질이 나빠질 법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점점 더 좋은 숙소에서 묵게 됐다. 현장에서 보던 제작진도, 시청자들도 깜짝 놀랄 만한 운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우정
‘꽃청춘’ 시리즈 다운 고생도, 예능을 책임져 준 ‘운빨’도 있었지만 역시 돋보였던 것은 배우들의 우정이었다. 평생에 걸쳐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포스톤즈에게는 다 큰 남자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차진 스킨십, 다정한 말투는 물론이고 누군가 갑작스레 시작한 상황극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 치는 찰떡 호흡까지 있었다. 웃음 뿐만 아니라 진솔한 대화도 있었다. 4인용 식탁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가족들의 이야기와 속내를 털어 놓는 포스톤즈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유황온천을 경험하기 위해 끝의 끝까지 원정을 이어가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속옷 바람으로 온천에 뛰어 들어 어린아이처럼 웃던 네 사람은 그곳의 분위기를 한층 훈훈하게 만들었다. 특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흥이 넘치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고 털어 놓은 정우가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꽃청춘’은 매주 금요일 9시 40분부터 방송된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꽃청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