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은 미소 뒤에 숨겨 둔 칼날 같은 눈빛을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러나 여자친구 앞에서만은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다.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박해진이 보여 주는 순간순간 다른 모습들이 뭇 여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고 있다.
유정(박해진 분)은 지난 18일 방송된 ‘치인트’에서만 해도 공감 능력은 커녕 감정이라곤 한 조각 조차 없는 듯한 차가움을 드러냈다. 홍설(김고은 분)과 학원에서부터 함께 걸어 오는 백인호(서강준 분)를 보고 “당장 학원 일을 그만 두지 않으면 너희 누나를 쫓아 내겠다”며 엄포를 놓는가 하면 허 조교(이우동 분)을 협박하고 다그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유정은 19일 방송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다. 백인호와 술을 마시고 있는 홍설을 찾아 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만취한 홍설의 주정을 다 받아 주고 업어서 집까지 모셔다 주더니, 다음 날에도 “절대 어디 가서 술 많이 마시지 말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 줬다.
빠르게 진전되는 홍설과의 사이도 관전 포인트였다. 유정은 홍설로부터 전날 잡화점 구경을 하다가 함께 봤던 시계를 선물받았다. 시계를 받아 들고 표정이 굳은 유정을 본 홍설은 “마음에 안 드나”라고 물었다. 유정은 말 없이 홍설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차고 있던 시계를 서랍 속 명품 시계 컬렉션 가운데 돌려 놓고 홍설이 사 준 시계를 손목에 둘렀다.
이날 유정은 홍설의 동네에 속옷 도둑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집에 함께 있어 주겠다고 말한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홍설이 옷장 속 TV를 꺼내려 하자 이를 돕던 유정은 실수로 그의 위에 쓰러진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유정은 속삭였다. “TV 안 봐도 돼.” 게다가 취침 직전 이어진 갑작스런 존대말 세례도 시청자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홍설은 유정에게 자신의 어디가 좋았냐고 묻는다. 유정의 기억 속 홍설은 자신과 비슷했다. 남에게 받는 것에 익숙지 않고, 뭐든 분쟁보다는 자신이 나서서 해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항상 손해를 보는 타입이었다. 동족 혐오였을까. 홍설과 유정은 서로를 경계한다. 그러나 과 행사 전날 감기를 앓던 유정은 모르는 사이 자신을 챙겨 주고 떠난 홍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유정은 홍설의 물음에 “비밀”이라고 답했다.
원작 웹툰에서는 연재가 꽤 진행된 후에야 이 같은 유정의 감정선이 드러난다. 해당 에피소드도 비교적 최근에야 나온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이 이야기를 6회와 연결시켰다. 그 동안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했던 ‘유정이 언제부터 홍설을 좋아하게 됐는가’에 어느 정도 해답을 준 셈이다.
철벽남일 줄만 알았던 유정이 홍설 앞에서 간단히 무장해제되는 이유를 살펴 보면 짠하다. 항상 자신에게서 받아 가려고만 했지, 줘 본 적이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홍설은 유정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었다. 싸구려 시계도, 감기약도, 따뜻한 챙김도 다 홍설이 건넨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최근 이만큼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로맨틱 코미디가 드물어서였을까. 심장을 간질이는 유정의 팔색조 매력은 벌써부터 월요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치인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