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은 더 이상 '밀크남'이 아니다 [직격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6.01.22 16: 41

 tvN '응답하라 1994' 이후 배우 유연석의 수식어는 '밀크남'으로 굳었다. 당시 극 중 대학 야구 선수 '칠봉이' 역을 맡은 그는 유쾌한 지방 친구들 사이, 자상하고 다정한 서울 남자의 매력을 보여주며 '어남쓰' 쓰레기(정우 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었다. 이전에도 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등 흥행작에서 소름끼치는 연기로 '악역 전문'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던 그지만, '밀크남 칠봉이'로 인해 이전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이미지가 구축됐다. 
'칠봉이' 이후 유연석은 다양한 배역을 맡아 변화를 꾀했다. '제보자'에서는 거짓과 협박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연구원 심민호로, '상의원'에서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왕으로, '은밀한 유혹'에서는 치명적인 제안을 하는 매력남 성열로 분했다. 또 드라마 '맨도롱 또똣'에서는 첫사랑에게 목숨을 거는 순정남 백건우 역을 맡았고,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매일 얼굴이 변하는 주인공 우진의 마지막 얼굴을 맡아 긴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가장 최근 맡은 역할은 '그날의 분위기' 스포츠 에이전트 재현이다. 재현은 그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캐릭터로, 새로운 도전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처음 본 여자에게 "오늘 웬만하면 그쪽과 자겠다"는 과감한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맹공남' 재현은 처음엔 낯설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연석이 그간 해 왔던 역할들은 온통 짝사랑 순정남들이었다. 그로 인해 적절한 때를 노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람둥이 느낌의 캐릭터는 신선할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처음이에요. 그 전에는 악역이라던지 짝사랑을 했죠.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못 하는 그런 외사랑 캐릭터가 많았는데 직설적으로 대사를 하고, 야한 농담을 하고 들이대는 캐릭터는 처음이었죠. 제가 가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시작했어요."
상대역은 여성미의 대명사 문채원이다. 유연석은 기자간담회 및 각종 홍보자리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가장 먼저 문채원을 상대역으로 떠올렸다고 했다. "야한 농담에 잘 대응하고,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 캐릭터라 '보이시'한 느낌의 문채원이 어울릴 것 같았다"고. 문채원과의 호흡에 대해 물으니 단순히 좋았다는 표현이 아닌 "'밀당'을 했다"는 신선한 대답이 돌아왔다. 
"채원 씨는 연기를 준비하는 스타일이 저와는 정반대에요. 저도 작품할 때 신에 대해서 많이 준비하고, 어떤 것을 할 지 계산을 하고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리얼하고, 처음 시나리오가 줬던 날것의 느낌을 살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바꿔 보려고 했는데, 채원 씨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신이 준비한 게 많아서 방법이 다르니까요. 연기하면서도 수정과 재현처럼 자연스럽게 밀당하는 분위기가 그려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호흡이 잘 맞았어요."
'그날의 분위기'는 KTX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두 남녀가 하룻밤을 걸고 벌이는 '밀당' 연애담을 그린 작품이다. '원나잇'이라는 소재를 통해 연애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재현은 처음 본 여자와도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는, 관습이나 통념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캐릭터. 유연석에게 '원나잇'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자간담회 때도 그 질문이 들어왔었는데요, 그래서 정말로 제가 VIP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봤어요. '원나잇'이라는 것 자체가 첫 만남에 잠자리를 가지는 것에 대한 얘기죠.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스킨십의 정도에 대한 이야기에요. 처음 만나서 인사만 해야하고, 손만 잡아야되고, 일주일 지나면 뽀뽀하고, 100일이 지나면 잠자리를 갖고? 그런 기준은 사실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저희 영화 제목처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인 것 같아요. 또 그 커플들의 성향에 따라서, 연애 가치관에 따라서도요. 그런 기준을 생각하는 자체가 역시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사실 유연석의 영화들은 그의 바람 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이번 영화 역시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을 터. 하지만 오랜 세월 탄탄히 기초를 닦아 온 그는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 줄 알았고, 부담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이번 영화가 잘 되면 좋죠. 그것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할 때마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긴 해요. 그래도 촬영을 하거나 작품을 정할 때 작품이 흥행할 거다 안 할 거다 배우가 점칠 수 없고 점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할 몫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의 것은 그냥 맡기는 것이죠."
유연석은 앞으로도 계속해 자신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액션이나 누아르 영화처럼 남성성을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악역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묻자, 상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악역을 할 때 사랑을 받았다기 보다, 악역을 할 때 배우들의 앙상블과 운이 잘 맞았어요. 악역이라서 그랬다기 보다는요. 악역을 해서 성적이 좋고, 아니고의 문제보다, 그 때 배우들의 조합이 좋았고, 재밌게 보시는 포인트가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유연석은 알고 보면 숨어있는 매력이 참 많은 배우다. 연기 뿐 아니라 사진, 요리, 가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 관심이 집결된 공간이 이태원에 직접 낸 라운지바 루아(LUA)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 도전해 TV나 스크린에서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티켓 파워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연애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활동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철벽' 답을 하기도. 이처럼 우아한 '밀크남'은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열정남'이었다.
"쉴 수 있는 찬스에 왜 사서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첫 공연도, 쇼케이스도, 너무 좋고 기뻤어요. 특히 연말이나 연초에 관객들을 만날 때 너무 좋았어요. 크리스마스 공연을 했는데, 커튼콜을 할 때 관객들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도 하고, 새해 큰절도 했어요.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연말과 한 해가 시작되는 때에 눈앞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고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는 게 큰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힘들 수 있는 시간이지만, 긍정적으로 있는 에너지가 분명 있는 거 같아서 내년에도 제안이 들어오면 할 거예요." /eujenej@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