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력은 장애입니다.”
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의 서진우(유승호 분)에게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진단.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만큼인지를 묻는 그에게 의사는 “길어야 1년”이라고 답했다. 1년 뒤 끊어지는 것이 그의 목숨인지 기억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러한 삶은 20대 초반의 서진우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남규만(남궁민 분)과 얽혔던 지난 4년 동안 서진우는 빠르게 닳아가고 있었다. 한층 더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것은 서진우의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는 속도만큼 러브라인도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1일 방송된 ‘리멤버’에서는 이인아(박민영 분)와 서진우 사이에 핑크빛 무드가 조성됐다.
이날 미소전구의 편에 선 서진우 측이 일호그룹을 상대로 재판에서 승리했다. 이에 변두리 로펌 식구들은 자축 파티를 열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은 순간, 연 사무장(이정은 분)이 서진우와 이인아의 행복한 모습을 발견했다. 이에 연 사무장은 송 변호사(김형범 분)을 끌고 자리를 피해 줬다.
취한 듯한 인아가 맥주를 한 캔 더 마시려 하자 진우는 “인아 너는 술 좀 그만 마셔라”라며 은근슬쩍 반말을 한다. 인아는 “방금 너라고 했나”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진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풀린 눈으로 두 사람의 나이차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는 인아를 보며 진우는 “아이, 진짜”라며 투덜거렸다. 인아에게 헤드락을 걸린 뒤에야 떨어진 “누나” 한 마디에 시청자들의 심장도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성비가 1:1로 맞춰질 경우, 그들은 으레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리멤버’ 속 서진우와 이인아 사이에는 커플로 발전할 만큼의 이성적 긴장감은 없었다. 너무도 혹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서진우에게 다른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인 줄 알았으나, 상처 입은 진우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치유받는다는 예상 가능한 설정이었던 모양이다. 성인이 된 서진우는 어느 순간부터 이인아를 더 이상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들의 시작은 의외로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목숨이든, 기억이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서진우가 과연 이인아와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진우에게 단 하나, 이인아만을 허락한다고 해도 이는 기쁨 만큼 큰 고통을 줄 터다. 가여운 서진우에게 찾아온 핑크빛 기류마저도 흐뭇하게 바라보기 힘들어 안타깝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