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이 제 옷을 입은 듯 물오른 로맨틱 코미디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분위기가 자신에게 잘 어울릴지 기가 막히게 가려내는 한예슬의 남다른 작품 선택력은 이미 전작들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늘 말투 뒤에 ‘이응(ㅇ)'이 하나 더 붙어있는 듯 애교 있는 콧소리와 사랑스러운 미소는 한예슬이 늘 로맨틱 코미디만 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그는 멜로면 멜로, 코믹이면 코믹 등 자신의 앞에 주어진 작품의 성격에 따라 변하는 배우다.
여전히 ‘꼬라지하고는’ 이라는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는 MBC ‘환상의 커플’에서 도도하면서도 허당기 있는 나상실로 변신했다면,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는 아련하면서도 늘 씩씩한 한지완을 연기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로맨틱 코미디다. 한예슬은 JTBC 새 금토드라마 ‘마담앙트완’에서 프랑스 비운의 왕비 앙트와네트와 통하는 신점(神占)으로 유명한 가짜 점쟁이 고혜림 역을 맡았다. 비록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결코 선을 넘지는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로 상대의 기운을 북돋고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첫 회부터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기며 등장한 한예슬은 시종일관 능글맞게 손님들을 대하면서도, 미국에 유학 보낸 어린 딸을 생각할 때는 모성애 넘치는 엄마로 돌아가 눈물짓는 등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송 전에는 엄마가 된 한예슬의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돈을 위해 거짓말을 해놓고도 딸의 전화에 “엄마가 방금 사기를 쳤다.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엄마 그 자체였다. 여태껏 보여준 적 없던 그의 모성애 연기는 극에 몰입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망가짐 역시 업그레이드됐다. 거울을 보며 이에 낀 커다란 고춧가루를 빼기도 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마스카라가 번지는 줄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거나 마리 앙트와네트를 만화책으로 공부하며 오스칼이 실존 인물이 아니냐고 묻는 엉뚱함은 보는 이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자칫 주책맞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만든 것은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능력이다.
사실 ‘마담앙트완’은 복병이 적지 않다. 영화로 착각하게 할 만큼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동시간대 tvN ‘시그널’과 김혜수부터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은 종편 편성이라는 점은 그의 고군분투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로맨틱 코미디 여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는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을 뿐이다. 앞으로의 전개에서도 역시 ‘하드캐리’할 그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마담앙트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