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살기가 담긴 유아인의 눈빛이 안방극장을 압도했다. 이방원, 정도전, 정몽준 세 사람을 둘러싼 본격적인 대립각이 예고됐던 엔딩은 훗날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피의 군주가 될 ‘킬방원’의 재림을 알리기도 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33회에서는 정몽주(김의성 분)가 정도전(김명민 분)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이방원(유아인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이방원은 불도저처럼 새 나라를 세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정도전을 보며 여전히 존경스러워 하는 한편, 외롭다고 느꼈다. 결국 그는 자신을 타이르는 부인 민다경(공승연 분)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새 나라가 정씨들의 나라가 될까 염려돼 정도전 몰래 세력을 키우고 그를 쉬게 만들려고 했던 것.
하지만 정도전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이방원 뿐만이 아니었다. 정몽주 역시 이성계(천호진 분)에게 정도전이 쉬어야 할 때가 있다고 구슬려 그를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정도전이 외증조모가 노비 출신일지도 모른다며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의 천한 출신을 문제 삼아 탄핵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방원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나도 스승님과 다른 길을 준비하려 했고, 여의치 않으면 치려했다”라며 “스승님이 탄핵 당하고 힘을 잃게 되면 포은을, 아버지를 씹어 삼킬 거다“라는 욕망을 드러냈다.
결국 몸이 꽁꽁 묶인 채 도당에서 끌려나오는 정도전을 본 이방원은 분노와 살기를 품은 눈빛으로 정몽주를 바라봤다. 이로써 훗날 선죽교를 사이에 두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하여가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의 단심가를 주고받으며 핏빛 시조 대결을 펼치게 될 이방원과 정몽주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예고됐다.
무엇보다 이방원을 연기하는 유아인의 연기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극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승이자 이제는 경계 대상이 되어버린 정도전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과 아비인 이성계를 회유해 자신의 앞길을 막으려는 정몽주에 대한 분노를 성공적으로 표현해낸 것.
그 덕분일까. 세 남자의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한 33회 엔딩은 순간 최고 시청률인 20.2%(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조성한 유아인의 연기가 보는 이들마저 숨죽이게 만든 것.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가 그려낼 역사의 굵직한 단면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에 유아인이 또 어떤 눈빛으로 이를 표현해낼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