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봇, 소리'(이호재 감독)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작품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라는 잊지 못할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국 영화로서는 흔치 않게 인공지능형 로봇이라는 SF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의 여정을 그리는 로드무비의 형식이지만, 로봇과 인간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버디무비로 봐도 무방하고, 잃어버린 딸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의 색채를 읽을 수도 있다.
27일 개봉한 '로봇, 소리'는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을 만나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배우 이성민이 딸을 찾는 가장 해관 역을 맡았다.
앞서 언급한 이 영화 특유의 독특함은 낯선 소재와 낯익은 소재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이 영화에서는 낯선 것들과 낯익은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있는데,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지금 '그래비티'를 보고 있는건가" 싶은 초반의 인공위성 추락 장면, 한국 영화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나사(NASA) 요원들, 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똑똑하고 섹시한 여성 캐릭터 등. 거기에 주인공인 말하는 로봇, 소리까지 더해지면 사차원도 이런 사차원이 없다.
반면 익숙한 것들도 많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 가수가 되고 싶은 딸, 그런 딸의 꿈을 반대하는 아빠의 보수적인 모습은 등은 다른 영화에서도 수없이 반복돼 온 낯익은 재료들이다.
그리고 '로봇, 소리'는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돼 있음에도 혼란스럽거나 너저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소재가 '부성애'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법 잘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인천 앞바다에 떨어진 인공위성과 10년째 실종된 딸을 찾던 아빠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첫 사건 이후, 영화는 부자연스러운 느낌 없이 제 길을 간다.
주인공 해관(이성민 분)과 그가 '소리'라고 이름을 붙여 준 인공지능 로봇은 함께 잃어버린 딸 유주(채수빈 분)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10년이나 생업을 포기하고 딸을 찾아다닌 아빠가 한 번 들은 소리로 그 사람의 휴대폰 번호 등 정보를 알아내는 로봇을 발견한다면, 그 로봇의 정체가 무엇이 됐든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데 쓰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로봇이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점차 가능한 일로 만들어 가면서 해관은 딸의 실종과 관련된 진실에 접근하고, 이 과정을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부성애는 몇 년 전 천만 영화로 흥행에 대성공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해 최근 영화 '대호'에서까지 두루두루 사용된 한국 영화의 보편적인 정서다. 그리고 '로봇, 소리'의 이호재 감독은 로봇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부성애라는 정서와 엮어 한국 관객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SF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낯선 것들은 로봇이라는 소재 아래, 낯익은 것들은 평범한 대한민국 평범한 아버지 해관 아래 묶인다. 그리고 해관과 소리가 친구가 되어갔듯이, 서로 조화를 이뤄 따뜻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eujenej@osen.co.kr
[사진] '로봇, 소리'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