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운 역사대로라면, ‘육룡이 나르샤’ 유아인과 천호진은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세울 터다. 그런데 말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매는 천호진이 죽을까봐 걱정되고, 독기를 품고 고려 유지 세력을 무너뜨리겠다는 유아인의 결연한 눈빛에 잔뜩 긴장을 하게 된다. 분명히 결말을 알고 있는데 극에 몰입해 역사를 잠시 잊게 만드는 연기, 배우 유아인이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펼쳐놓고 있는 신기한 광경이다.
지난 26일 방송된 ‘육룡이 나르샤’ 34회는 이방원(유아인 분)이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 이성계(천호진 분)를 지키며 정몽주(김의성 분)를 비롯한 고려 유지파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이성계는 조세 개혁을 반대하는 권문세족의 화살에 맞아 낙마하며 부상을 당했고, 정몽주의 함정에 빠져 쫓기는 신세가 됐다.
절망이 감도는 이성계에게 더 이상 점진적 변혁은 의미가 없다며, 핏빛 가득한 전복을 다짐하는 이방원의 한이 서린 분노는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관군이 쫓고 있는 가운데 이성계는 금방이라도 목숨을 거둘 듯 보였고, 이방원은 금방이라도 이성계와 함께 관군에게 붙잡힐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을 풍겼다. 더 이상 정도를 지킬 의사가 없음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피바람을 일으킬 것임을 안방극장은 이방원의 살벌한 눈빛에서 결연한 미래를 발견했다.
동시에 정몽주를 없애고 새 나라를 세우려는 이방원의 살떨리는 각오 역시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암살을 지시한 선죽교. 이제 드디어 핏빛 선죽교의 이야기가 ‘육룡이 나르샤’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이 드라마는 극적인 이야기를 위해 이성계와 이방원을 벼랑 끝에 몰아넣고 조선 건국의 고삐를 바짝 조이게 하는 시발점으로 삼았는데 상당히 긴박감이 흘렀다. 분명히 이방원과 이성계는 살아남을 것이고, 심지어 역사적인 승자가 될 예정인데도 위기에 빠진 난세를 구하는 영웅을 조바심을 갖고 보도록 안방극장을 조련했다. 역사와 가상을 적절히 섞은 '육룡이 나르샤'는 그렇게 역사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을 홀리고 있다.
그동안 극중에서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던 이성계의 변화를 잘 받쳐주고, 참고 참았던 이방원의 야욕과 폭주를 극적으로 그린 유아인의 연기가 설득력을 부여했다. 역사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을 긴장에 빠뜨리는 연기,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오히려 차갑게 후일을 도모하려는 듯 더욱 확고한 건국 의지를 불태우는 이방원은 유아인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마지막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유아인이 눈빛에 쓸어담은 격노 연기는 한순간에 시선을 빼앗았다. 매회 이 드라마는 유아인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마르지 않는데, 유아인은 그야말로 역사를 이기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 jmpyo@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