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티브 잡스'는 일반 전기영화와는 맥을 달리한다. 아론 소킨의 각본과 대니 보일의 연출이 만난 전기영화는 어떨까 궁금함을 자아냈었는데, 역시 영화는 여타 전기물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특히 이 영화는 잡스 외에도 이런 잡스를 어떤 의미에서는 만들었던 주변 인물들에 더욱 시선이 가게 만든다.
특히 잡스 뒤 이른바 '공돌이'로 불렸던 다른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다. 워즈니악은 애플의 공동 창업자로서 잡스 신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함께 애플을 만들었지만 너무 달랐던 두 천재의 숨막히는 논쟁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다.
'스티브 잡스'는 일대기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전기 영화인데 이 지점에서도 새로운 것은 잡스의 세상을 바꾼 3번의 혁신적 프레젠테이션 무대 뒤 모습이 포인트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은 냉정한 천재 스티브 잡스가 기획과 마케팅 등 전반적인 흐름을 관리하고 비전을 제시했다면 워즈니악은 이를 현실화한 뛰어난 엔지니어. 실제로 애플의 초창기 기반이 된 히트작 애플 2 컴퓨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티브 워즈니악이 손수 만들어낸 작품이다.
잡스는 이런 워즈니악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매몰차다. 프리젠테이션에서 애플2팀을 소개시켜달라는 일면 합당한(?) 요구를 묵살하는데 여기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네가 하는 게 뭐야? 왜 사람들이 다들 널 천재라고 하지?"란 워즈니악의 말에 "난 오케스트라의 지위자"라고 답변하는 잡스의 논쟁은 마치 한 편의 탁구경기를 보는 것 같다.
잡스가 번번히 내뱉는 "너를 용서하겠다"라는 말에 워즈니악은 응수한다. "넌 신이 아냐. 난 용서를 구하려 온 게 아냐. 네게 용서받을 일은 없어."
그러면서도 둘의 관계가 소위 말하는 '브로맨스'를 지닌 것이 관객이 영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1막 매킨토시 프레젠테이션 후 판매 실적 악화로 이사회와 충돌을 하게 되어 결국 잡스는 애플을 떠나게 된다. 그 후 넥스트를 설립하고 블랙 큐브를 제작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잡스를 찾은 워즈니악은 자신이 왜 그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게 됐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여전히 애플 2팀과 포지션에 대한 다른 생각은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워즈니악은 순간 순간 잡스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등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흐른다. 워즈니악에게 "다 아는 얘기 그만해"라며 그의 말을 묵살하는 잡스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다. 믿지 않겠지만 자신이 가장 먼저 챙길 사람이 워즈니악이라고.
워즈니악을 연기한 세스 로건은 실제 인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넘어 얼마나 그게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배우인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코미디에 특화된 로건 대신 '인품은 갖추지 못한 천재'를 사랑하고 또 증오하는 전설적인 엔지니어, 혹은 누군가는 '공돌이'라고 부르는 워즈니악만 있다.
워즈니악 외에도 케이트 윈슬렛이 분한 오피스 와이프인 매킨토시 마케팅 책임자 조안나 호프만, 제프 다니엘스가 연기한 과거 애플의 CEO 존 스컬리 등 잡스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핵심적 인물들의 불꽃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대사 안에서도(혹은 이해되지 않는 전문용어들의 향연 속에서도) 러닝 타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 nyc@osen.co.kr
[사진] '스티브 잡스'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