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는 TV와 각종 시상식에서 자신의 팬들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한이 맺힌 것일까. 그 누구의 간섭과 제약도 받지 않는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최고'가 무엇인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뮤지컬 '드라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십자가 위로 새빨간 핏물이 들고 뿌연 안개가 서리면서 웅장한 사운드가 흐르자, 등골이 오싹한 기운이 무대를 넘어 객석에도 스며들었다.
절름발이에 나무 껍데기 같은 거친 주름을 가진 드라큘라 백작과 피에 굶주린 여성 흡혈귀들이 야성미 넘치는 몸부림으로 포효하며 사람의 목덜미를 훔치는 순간 생생한 공포가 밀려왔다.
지난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연을 시작한 뮤지컬 ‘드라큘라’는 흡혈귀를 소재로 다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400년이 지나서도 잊지 못한다는 드라큘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판타지 로맨스 작품이다.
19세기 유럽을 그대로 무대 위에 구현한 듯 고딕풍의 디자인과 트란실바니아 성을 감싸는 몽환적인 보랏빛 안개, 국내 최초로 시도된 4중 회전 무대, 플라잉 기술이 어우러진 입체적인 무대 연출이 눈길을 끌었다. 인물들의 얼굴 위로 쏘는 다채로운 조명 컬러가 각 캐릭터만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드라큘라’는 시간을 압축하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연출력, 화려하고 생동적인 무대, 배우들의 차진 연기력과 노래 실력 등 3박자가 딱 맞아 떨어져 전통을 자랑하는 대작다운 내공이 느껴졌다.
연출가의 연출력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 장치가 큰 역할을 했다. 나무 바닥을 열고 올라오는 드라큘라들과 바라보기만 해도 어쩐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보라색, 빨간색 조명이 드라큘라의 음흉함을 높였다. 또 인물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무대는 공연의 묘미를 다채롭게 드러내려는 연출자의 감각이 돋보였다.
배우들의 열연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는데, 가수 김준수가 드라큘라의 절망과 슬픔을 표현해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발을 절고 등이 굽은 드라큘라를 표현해내는 김준수의 섬뜩하고 가슴 시린 연기가 꽤나 감동적이다. 특히 400년 동안 사랑해온 여자를 위해 희생을 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가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연기가 흡혈귀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살렸다.
김준수가 연기하는 드라큘라는 사람의 피를 먹어야만 살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픔을 가진 안타까운 인물이다. 홀 전체를 울리는 그의 노랫소리가 드라큘라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귓가를 자극했다. 더불어 미나 머레이를 연기한 배우 임혜영과 함께 부르는 사랑 노래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면서도 적잖은 감동을 안겼다.
핏빛 없는 하얀 얼굴에 흰 조명을 받은 드라큘라 김준수의 얼굴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할 때마다 새로 입고 나오는 의상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나중에는 또 어떤 옷으로 갈아입고 나올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미나의 화이트와 드라큘라의 블랙이나, 그린과 레드 컬러의 보색 의상으로 화려함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등장과 퇴장 때마다 울려 퍼지는 팬들의 환호가 열기를 더했다. 무대를 휘어잡는 섹시미와 탄탄한 실력을 가진 뮤지션 김준수에게 ‘드라큘라’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지니 피를 갈구하는 그에게 한껏 목이라도 내주고 싶어졌다./purplish@osen.co.kr
[사진]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및 공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