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고통은 매번 해결 직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생겼다. 숱한 아픔으로 뻥 뚫린 가슴을 사람들이 채워가고 있는가 했더니, 점점 지워져 가는 기억이 다시 그를 불행의 늪으로 끌어 내리려 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와 연관된 인물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 유승호 이야기다.
지난 27일 방송된 ‘리멤버’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는 미소전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가 지난 4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일호그룹에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서진우는 일호그룹의 남일호(한진희 분)와 남규만(남궁민 분)을 몇 번이고 사지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이 아버지와 아들은 항상 교묘하게 위기를 피하면서 되레 서진우를 압박해 왔다.
그런 서진우가 일호그룹의 계략으로 전자레인지 폭발 사고 책임을 덮어 쓰고 도산 위기에 빠진 미소전구의 변호를 맡아 승소했다. 일호 측 박동호(박성웅 분)가 미소전구 공장장까지 돈으로 매수했지만, 이번에는 서진우에게 통하지 않았다. 일호에 유리한 위증을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공장장에게 서진우는 아무런 심문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전자레인지 폭발은 불량 전선 때문이며, 이는 일호그룹의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남규만은 서진우에게 엄청난 과거를 폭로한다. 박동호의 아버지가 서진우의 가족들을 사망케 한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가뜩이나 기억 이상 증세가 심해지고 있던 시점에서, 서진우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듣고 괴로워했다. 남규만의 발언 때문에 서진우는 지난 4년 간의 기억을 일시적으로 잊게 됐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집 앞에서 기다리는 서진우의 모습에 모든 사정을 다 알게 된 이인아(박민영 분)도 눈물을 흘렸다.
서진우가 처음으로 일호그룹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였는데도, 영 개운치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진우가 이번 재판으로 일궈낸 것은 대기업에 대한 소기업의 승리, 거대 구조에 대한 개인의 승리였다. 그러나 기껏 현실에 맞붙어 이겼더니 이번에는 서진우를 지탱하고 있던 복수심까지 기억과 함께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서진우 곁으로 조력자들이 겨우 모여들고 있는 상황에서 찾아온 기억 이상은 원통함을 남긴다. 그동안 서진우를 도와주겠다며 나선 사람들은 언제나 일호그룹으로부터 모종의 거래를 제안받고 그를 등졌다. 그러나 이제는 강 판사(김진우 분)도, 박 형사(김영웅 분)도, 심지어는 박동호까지 서진우의 편으로 돌아섰다. 이제 서진우의 편이 아닌 것은 운명 뿐이라 더 서글프다.
모든 사건의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박동호와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언제 기억 이상이 다시 찾아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서진우는 남규만을 향한 복수를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어찌됐든 서진우,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bestsurplus@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