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서는 한국 최고 재벌과 힘없는 서민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싸움이 성립이나 될까 의문이 먼저 드는 그 어마어마한 차이를 좁혀 주는 것이 바로 법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한 공간에서 그리기 위해서는 법정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 드라마에서 유독 판·검사와 변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지난 28일 방송된 ‘리멤버’에서 탁영진 검사(송영규 분)는 재벌 남일호(한진희 분)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직전까지 탁영진의 선배로 부장검사직을 맡고 있던 홍무석(엄효섭 분)처럼, 자신을 도와 갖은 부정부패를 덮고 엄청난 돈을 벌어가라는 것이다.
탁영진은 남일호와의 술자리에 나선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원체 꼿꼿한 독불장군으로 유명했다. 남일호와 홍무석의 궤변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갑자기 실소를 터뜨리며 젓가락을 놓았다. 탁영진은 “예의는 여기까지만 차리겠다”며 상대편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한때 자신의 상사였던 홍무석에게는 “일호의 개 노릇이 더 잘 어울린다”며 “당신과 같은 법밥을 먹는다는 게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리멤버’가 14회를 이어오는 동안 가장 통쾌한 장면 중 하나였다.
사실 탁영진도 항상 올바르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박동호(박성웅 분)으로부터 마약사범 관련 정보를 넘겨 받고 재벌2세 망나니 남규만(남궁민 분)를 풀어줬던 것도 탁영진이었다. 또 그는 지나치게 강직한 후배 이인아(박민영 분)의 돌발 행동들이 옳은 것임을 알면서도 저지시키곤 했었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찾아 검사직을 버리고 변호사가 된 이인아를 보며 법복을 입게 됐을 당시의 초심을 떠올리기도 했다. 4년 동안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만을 바라보며 거기에 얽힌 일호그룹의 비리를 점점 밝혀 나가는 이인아의 모습에 탁영진도 대나무 같은 성정을 되찾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오랜 친구 남규만을 의심하는 강석규 판사(김진우 분)의 수심 가득찬 얼굴도 전파를 탔다. 강석규는 서진우로부터 4년 전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진범이 남규만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후부터 사실 확인을 위한 자료 수집에 나섰다.
강석규 역시 처음부터 남규만을 향한 촉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규만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일호그룹의 편에 선 박동호의 변호 실력과 협잡 기술이 능수능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인생의 반을 친구로 지내왔던 남규만이 살인자라고 상상할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강석규도 나이는 어리지만 대쪽 같은 판사로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이었다. 수상쩍은 상황을 그냥 넘기는 캐릭터도 아니다. 그래서 강석규는 다시 국과수의 문을 두드리고,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과 일호그룹의 관련성을 추적한다. 그러면서 남규만을 향해 “친구가 살인자라면 판사로서도 죄를 물어야 하고 친구의 도리로도 죄를 묻을 수 없다”며 마지막 경고까지 날렸다.
소위 ‘법밥’을 먹고 사는 탁영진과 강석규의 당연한 각성은 현실 속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더욱 반갑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같은 먹잇감을 노리는 두 사람의 협업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