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의 화술은 '응팔' 속 '치타 여사' 만큼이나, 재치 있었고, 시종 유쾌했다. 자신을 깎아내리면서도, 중요한 답변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라미란은 지난 2015년 케이블에서 두 개의 작품을 소화했다. 상반기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4'에서는 시즌 12~13에 이어 또 한 번 라과장을 맡아 "넣어둬"를 연발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작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이하 '응팔')였다. 김성균과 부부호흡, 류준열·안재홍과는 모자호흡을 처음으로 맞췄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대박'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방송 전부터 연출자인 신원호 PD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 작품은 망한다"라고 자신(?)했던 것 때문인지, 라미란도 처음에는 이 작품이 망할 줄 알았었다고 했다.
"0회 방송을 보고 망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찍고 나보니 제게 인생작이 됐죠. 쌍문동 어른들 중에 혼자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어색하면 어쩌나였죠. 다행히 아이들은 사투리를 안 써서 거기에 얹혀갔어요."
레오파드 의상을 반복 착용해 수식어처럼 따라 붙었던 '치타 여사', 그리고 시트콤보다 더 큰 웃음을 유발했던 각종 대사와 리액션들에 대한 뒷이야기도 전했다.
"호피 의상요? 대본에 있었어요. 의상팀에서 준비했죠. 호피무늬가 요즘 많이 없어서 재래시장 같은 곳을 돌아다녀서 힘들었다고 해요. 애드리브 없어요. 전 대본에 충실해요. 어떤 분들은 제가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줄 아는데, 아니에요. 거의 써준 그대로 해요. 성균 씨를 때리는 장면에서만 약간 애드리브가 있었죠.(웃음) 잘 맞아줬어요. 지문에 충실했어요. 여권에 적힌 영어 스펠링을 몰라 '아들 미안'이라고 말할 때는 '미안하듯 멋쩍은 웃음'이라 적혀 있었죠."
큰 화제가 됐던 여권신을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 된 '응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였어요. 가족들이 전면에 나와주고, 모두가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요즘엔 정말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전원 일기' 같다고 하시는데, 이제는 그런 게 그리워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응팔'을 통해 정말 많이 알려졌다는 것을 실감한 이야기를 전하며, 차기 '응답하라' 시리즈에 대해 '감독님이 안 부르실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재출연 욕심을 살짝 내비쳤다.
"세수도 안 하고 동네를 많이 돌아다녀요. 그러면 요즘은 '정봉이 엄마'라고 불러요. 그럼 저는 또 돌아보죠.(웃음) '막영애'를 할 때도 '라과장'이라 불러주셨는데, 이번엔 '정봉이 엄마', '치타 아줌마'로 부르세요. 나이드신 분들도 정말 많이 알아봐주셔요. 다음 '응답'이요? 감독님이 새로운 얼굴을 좋아해서 안 불러주실 거 같아요. 혹시 다시 불러주시면 감사하죠. 그때는 제 남편 찾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결혼을 한 5번 정도 한 걸로.(웃음)"
하고 싶은 장르를 물으면, 언제나처럼 '멜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심 없이, '해보지 않은 장르'라고 이유를 말하면서도, 상대 남자배우에는 늘 사심이 묻어나는 라미란이다.
"해보고 싶은 건 멜로죠.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선남선녀가 하는 그런 멜로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멜로였으면 해요.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런 멜로요. 상대 배우로 늘 젊은 친구들을 얘기했는데, (댓글에) '철컹철컹' 달려요. 그러다가 최근엔 유해진 선배님으로 낮췄더니(?) 괜찮았어요. 솔직히 항상 그 시기에 잘 나가는 젊은 배우들과 호흡해보고 싶죠.(웃음)"
물론 일부에서는 라미란의 쏟아진, 쏟아지는, 그리고 쏟아질 작품들을 나열하며 '이미지가 소비된다', '에너지 소진이 염려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라미란의 입장은 확고하다. '일은 안 하면 배우가 아니다'라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행복한 거죠. 일하는 기간보다 쉬는 기간이 많을 때에 비하면요.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어요. '질려버리면 어쩌나' 라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일을 안 하면, 배우가 아니다'는 생각이 커요. 일을 해야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죠. 최대한 겹치지 않게, 질리지 않게, 연구를 할려고요. 다른 작품에선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끔 말이죠. '쉬고 싶다'는 건 제게는 건방진 생각이에요."
라미란은 지나간 2015년, 그리고 다가올 2016년을 '뻥튀기'에 빗댔다. '응팔'은 라미란에게 노력으로 빚어낸 맛있는 뻥튀기 같은 거였다.
"작년은 뻥튀기를 만든 해에요. 올해는 그 뻥튀기를 먹어야죠. 가늘고 길게, 도드라지지 않게, 송곳처럼 튀어나오지 않게, 스며드는 연기를 할게요." / gato@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