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지상파 가족 드라마는 중년 시청자들의 자극적인 입맛을 당기기 위한 ‘막장 드라마’ 일색이 됐다. 분명히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했던 드라마가 처음부터 일명 발암 인물들이 가득하거나, 중반 이후 짜증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변절했다.
젊은 시청자들을 목표로 하는 드라마가 아니기에 이미 숱한 가족 드라마를 접한 중장년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막장 장치’는 갈수록 심화됐다. 불륜과 출생의 비밀, 비윤리적인 악행을 개연성 없게 다룰 경우 우린 흔히들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데, 가족 드라마로 시작한 드라마들은 어김 없이 이런 ‘막장’의 유혹에 흔들렸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실제 시청자들이 청정 드라마를 외면하는 현상을 보이며 ‘가족 드라마=막장 드라마’라는 씁쓸한 공식이 성립된지 오래다. 그래도 언어의 연금술사이자 한국 드라마계의 거장인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재밌으면서도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내세웠다.
감각적이고 화려하지만 거추장스럽지 않으며 직설적인 표현법. 김수현의 대사는 늘 그랬다.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은 짜릿했고,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을 하게 했다. 사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남녀간의 얽히고설킨 사랑은 집요하고 질척거리게 그려졌고, 복수와 불륜과 치정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 그리고 가족애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 가리지 않고 김수현의 드라마는 파격적이고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김수현은 그 누구보다도 상업적인 작가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그의 작품을 누구 하나 막장 드라마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가 다루는 인물과 설정, 그리고 주제의식에 대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갈릴지언정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설정을 가미하더라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에 셀 수 없는 숫자의 작품을 꾸준히 하면서도 매번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김수현은 가족 드라마에 이 시대의 고민을 담거나, 화두를 던지며 마냥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하진 않았다. 대가족의 해체 속에서도 꿋꿋하게 대가족을 다루면서도 사회 변화를 건드렸다. 가족의 울타리라는 고전적인 접근 방식 안에서 미혼모, 낙태, 동성애, 이혼과 재혼, 그리고 달라진 고부관계와 여성의 지위를 건드렸다. 그의 드라마를 보면 세태가 있었고,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기에 과거와 미래가 차례대로 보였다.
1991년 ‘사랑이 뭐길래’를 시작으로 공전의 인기를 누린 ‘목욕탕집 남자들’(1995), ‘부모님 전상서’(2004), ‘엄마가 뿔났다’(2008), ‘인생은 아름다워’(2010), ‘무자식 상팔자’(2012) 등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전통적인 가족상과 달라진 현재의 가족상이 적절히 녹아 있었고 화제이자 문제적 작품으로 기억됐다.
김수현은 새 가족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로 돌아온다. 오는 13일 첫 방송으로, 주말 오후 9시대에 방송된다. 현대인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품어줄 정통 가족 드라마로, 3대에 걸친 대가족속에서 펼쳐지는 갈등과 화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족의 소중함을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릴 예정이다.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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