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2016 KBS 연예대상’ 베스트커플상도 문제 없을 듯하다. 대선배와 까마득한 후배에서 매니저와 연예인으로 변한 박명수와 이경규의 ‘꿀조합’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함께 다양한 시사점을 던졌다. 특히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그들의 방송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선사했다.
박명수는 지난 29일 방송된 KBS 2TV ‘나를 돌아봐’에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던 선배 이경규를 매니저로 맞아 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지만, 역시 두 사람 모두 베테랑 방송인이었다. 박명수가 호통을 치면 이경규가 굽신거리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폭소를 자아냈다.
이날 이경규는 박명수의 첫 스케줄을 펑크냈다. ‘예능 대부’ 이경규가 나이 차이까지 10살이나 나는 후배의 집 앞에 찾아가 운전을 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프로답게 마음을 추스르고, 생방송 전 약과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박명수의 심부름에 나섰다.
박명수는 그런 이경규의 눈치를 보면서도 호통과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 하던 것처럼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면 오히려 재미는 반감됐을 터다. 그는 심란해 하고 있을 선배에게 판을 깔아 주면서 예능적 재미도 챙겼다. 그런 박명수의 태도 덕에 이경규도 상황에 쉽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돋보였던 것은 박명수의 라디오 생방송이 끝난 후 두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대화였다. 박명수는 이경규에게 “언제까지 방송을 하실 거냐”며 웃음기 섞인 질문을 건넸다. 이경규는 “말 할 때까지 할 것”이라며 진지한 대답을 내놨다. 그는 “병에 걸려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라도 방송을 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박명수도 “제 꿈도 그것이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꿈”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경규는 “전학을 가면 전학을 온다. 내가 빠지면 방송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산”이라며 “오히려 더 잘 된다.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비굴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한다. 그건 내가 못 참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1인자의 자리를 지켜온 이경규의 남다른 마음가짐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경규는 왜 아침 스케줄에 오지 않았냐는 박명수의 질문에 “마음의 문이 안 열렸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박명수는 “생각을 하면 진지하고 재미가 없어 진다”며 “즉흥적인 요즘 방송 스타일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경규 역시 “나는 진정성을 위해 몰입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맞받아쳤다. 서로의 방송 철학을 말하는 이들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예능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선배에게 버럭하고 정색하다가도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며 눈을 빛내던 박명수와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이경규의 조합은 ‘나를 돌아봐’의 터닝 포인트가 될 듯하다. 이미 베스트커플을 예약해 둔 듯한 이경규와 박명수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나를 돌아봐’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