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그널’이 안방극장에 남기는 환상은 참 서글프다. 현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망이 없어보이는 연쇄 살인 사건이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무전이 있는 ‘시그널’에서는 범인이 꼭 잡히길 바라는 마음. 현실은 정의구현이 어느 순간부터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됐지만 ‘시그널’에서는 생생하게 펼쳐지는 현재진행형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이 시청자들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 극적인 긴장감이 팽팽한 범죄 스릴러 장르. 사전 제작 드라마로 이미 대본이 모두 완성됐고, 촬영 역시 상당히 많이 진행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전으로 연결돼 있어 공조 수사를 펼친다는 구성. 드라마에서는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으로 칭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모두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떠올린다.
‘시그널’에 나오는 형사들은 입신양명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김범주(장현성 분), 그리고 범주의 수하로서 이재한(조진웅 분)의 죽음에 얽혀있는 것으로 보이는 안치수(정해균 분)를 제외하고 죄를 저지른 사람은 처벌받는다는 사회 안전망을 사수하기 위해 때론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사들, 특히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인 무전은 피해자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고 살인범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아직 3회밖에 방송되지 않았고, 과거와 현재의 형사인 이재한과 박해영(이제훈 분) 역시 혼동 속에 사건을 수사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기대감을 품고 드라마를 보게 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우리는 ‘시그널’ 속 형사들에게 희망을 건다. 그토록 전국민을 안타깝고 불안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마가 드라마 속에서는 꼭 잡히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시청하고 있는 것.
현재의 프로파일러이자 비과학적이지만 무전이 과거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해영은 이재한에게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재한이 살고 있는, 그리고 끔찍한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 남부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미래의 남자. 재한과 해영이 힘을 합쳐 그때 그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게 막을 수만 있기를 ‘시그널’을 보는 안방극장이 그토록 염원하는 결말일 터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재밌는 전개 속에서도 씁쓸한 뒷맛이 올라온다. 드라마 속 판타지 설정에 희망을 품고 기댈 수밖에 없는 것. 그만큼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정말 기본적인 테두리조차도 지켜지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 jmpyo@osen.co.kr
[사진]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