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풀이 과정 때문에 헷갈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결론이 나 있는 이야기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 속 삼각관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서강준이 ‘어남유(어차피 남편은 유정)’ 판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당초 원작 웹툰 ‘치인트’ 속 메인 커플은 유정과 홍설로, 이는 연재 내내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매우 공고한 사실이었다. 물론 백인호와 홍설 사이에 은근한 핑크빛 무드가 포착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홍설의 마음은 항상 유정을 향했다.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홍설과 백인호의 관계는 오히려 남매에 가까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 ‘치인트’에서도 이 같은 설정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백인호(서강준 분)는 여전히 홍설(김고은 분)을 ‘개털’이라 부르거나 빌붙곤 한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었으니, 백인호를 연기한 배우가 서강준이라는 사실이다. 맑고 밝은 갈색 눈동자로 지그시 이쪽을 쳐다볼 때면 여심은 물론 남심까지도 흔들릴 터다.
서강준의 ‘멜로 특화 눈빛’이 더 돋보이는 이유는 드라마 속 백인호가 원작의 까칠했던 부분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는 데도 있다. 더불어 드라마 ‘치인트’는 백인호의 상처를 보다 상세히 조명해 몰입도를 높였다. 불의의 손 부상으로 5년 동안 피아노를 멀리 했지만,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홍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 더 애틋하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도 백인호의 인기는 상당했다. 원체 기대치가 컸던 캐릭터인지라 처음 서강준이 백인호로 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강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해줬다. 껌을 씹다 뱉듯 중얼거리며 말하는 습관도, 건들거리는 몸짓도, 돌아서면 괜히 한 번 더 생각나는 얼굴도 서강준이 살려 낸 백인호의 모습들이다. 오빠처럼 꾸짖고, 지켜주는 백인호의 태도에 홍설도 그를 가장 편하게 여기는 듯한 눈치다.
그러나 백인호 앞에는 유정이라는 큰 산이 있다. 유정에게는 완벽한 외모와 재력, 모두에게 사랑 받는 처세술과 홍설 앞에서만 경계를 푸는 ‘대형견’ 매력까지 있다. 유정을 응원하자니 백인호가 눈에 밟히고, 백인호의 편에 서자니 유정에 흔들린다. 어느 한 커플을 꼭 짚기 힘든 상황에 시청자들도 즐겁고도 괴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분위기에 파장을 일으킬 만큼 매력적으로 백인호를 소화해 낸 서강준의 덕이었다.
이야기의 딱 절반이 남았다.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백인호의 짝사랑, 과연 잠깐이라도 응답받을 수 있을까. /bestsurplus@osen.co.kr
[사진] ‘치인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