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린 딸을 산채로 불태운다. 왕권을 향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극장에서도 보기 힘들 내용같지만 국내 IPTV에서 커트 없이 볼 수 있다. 이걸 만드는 할리우드만 막 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세계시장의 개방성 폭도 갈수록 넓어지는 중이다.
할리우드가 가장 기본적인 윤리 차원에서 상업영화 내용 가운데 금기로 삼던 제약들이 슬금슬금 철창 밖으로 풀려나고 있다. 유아와 어린이 살해의 등장이나 묘사를 최대한 억제하던 것이 리얼리티를 핑계삼아 여과없이 스크린에 상영중이다. 심지어 부모가 보는 앞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까지 최근 국내에서 상영됐다. 현실 세상은 영화보다 더 아수라장일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잔인함이 사회에 범죄로 전파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염려될 정도다.
한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900만 관객을 넘어선 19금 영화 '내부자들'에는 권력층의 부조리 고발을 이유로 사극 대작 '간신' 연산군의 음란파티에 버금가는 장면들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지상파 TV보다 표현이 자유로운 케이블과 종편의 예능 및 드라마에서는 깜짝 놀랄 수위의 자극적인 방송들이 수시로 전파를 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대표적인 최근 사례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다. 미국 CIA와 군 특수부대, FBI가 합동 작전을 통해 잔인무도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 조직을 소탕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냉혈 복수극을 다룬 영화다. 에밀리 블런트와 베니치오 델 토로 등 주연 배우들의 열연이 압권이고 빠른 전개와 극적인 반전, 생생한 총격 액션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해 연말 국내에서 막을 올린 이 영화는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봤지만 스릴러와 액션영화 팬들 사이에서 높은 평점과 반응을 얻었다. 실제로 수 백만 관객 동원을 내세우는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터스터들보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재미 또한 일품이다.
(아래 기사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됐습니다)문제는 최근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사회고발이나 이라크, 아프칸 전쟁영화 수작들처럼 '시카리오'도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사실이다. 리얼한 허구는 무서운 현실보다 더 관객을 자극하고 떨게한다.
멕시코의 후아레즈 등 마약 카르텔이 장악한 지역에서의 지옥도는 이미 외신 등을 통해 자주 접해온 상황. 반대 시위를 했다고 대학생 수 십명을 죽여서 파묻는 만행이 보도돼도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영화는 이런 후아레즈의 마약 조직과 맞서는 미 정보기관이 복수심에 불타는 한 인물을 고용해 벌이는 소탕작전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 앞 살인은 물론이고 아버지(천하의 악당이긴 하지만)가 보는 앞에서 철없는 아들들마저 피를 뿌리며 죽어나간다.
가뜩이나 신문지상에 어처구니없고 통탄할 어린 자녀 학대의 패륜 부모들 뉴스가 나오는 시점에서 왠지 모를 불쾌감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뿐 아니다. HBO 등 미국의 거대 엔터회사들이 이같은 선정성 경쟁에 앞다퉈 휘발유를 끼얹고 있다. 시즌 5가 전세계 160개국에서 수 조원대의 매출을 올린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근친상간, 존속살인, 혼음, 강간 등 예전같으면 극장 상영도 힘들었을 쎈(?) 장면들이 매회 TV에서 등장한다. 그나마 좀 걸러졌다는 국내 IPTV 방영에서도 목을 자르거나 내장이 흘러나오고 남녀 성기가 노출되는 장면들이 모자이크 없이 흘러나온다.
조지 R.R. 마틴 원작의 '왕좌의 게임'은 매 회 제작비가 수 백억원에 달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CG나 연기, 연출이 금세기 최고의 미드로 꼽히는 대작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일으키는 반향이 큰 까닭에 할리우드의 금기가 빠르고 쉽게 깨지게 만드는 나쁜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이로 인한 사회악의 창궐을 막자는 규제 운동, 도대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할 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 풀기 어려운 숙제임에 분명하다./mcgwire@osen.co.kr
<사진>'왕좌의 게임'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