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을 중심으로 조선의 기틀을 세운 여섯용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육룡이 나르샤’ 제작진의 기획의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숱한 조선 배경 사극에서 등장할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방원.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인해 형제를 죽인 철혈군주로 그려지며 사극에서 늘 악역에 가까웠던 이방원이 색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가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이방원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왜 그가 사람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시청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그동안의 사극과 다른 각도로 인물을 바라보는 까닭에 이방원이라는 흔하게 등장했고 숱하게 다뤄졌던 인물과 역사가 가미된 허구가 재밌게 펼쳐지는 중이다.
유아인은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을 연기하고 있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방원(백윤식 분)이 “이방원의 대의가 곧 조선의 대의”라고 말하는 부분을 통해 자신의 손으로 일군 새 나라의 권력을 움켜쥐려는 이방원의 슬픈 야욕을 드러낸 바 있다.
‘육룡이 나르샤’가 ‘뿌리깊은 나무’의 앞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라고 볼 때, 현재 이방원이 홀로 정몽주(김의성 분)를 살해하는 판단을 내리고 아버지 이성계(천호진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으로부터 질책을 받아도 자신의 선택이 맞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것이 탄탄하게 연결이 된다.
정몽주가 새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절대로 협력하지 않음을 정도전과 이성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차마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있는 와중에 이방원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나홀로 큰 결단을 내린 지난 2일 방송된 36회만 봐도 그렇다. ‘뿌리 깊은 나무’의 태종 이방원의 “이방원의 대의가 곧 조선의 대의”라는 말의 배경이 된다. 명망 높은 유자인 정몽주를 죽이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서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불리하게 기울던 정치판을 바꾼 이방원에게 돌아온 것은 책망이었다.
동시에 신권 정치를 꿈꾸는 정도전과 강력한 왕권 정치를 바라는 이방원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새 나라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방원의 이야기, 이방원을 배제하고 혁명을 이루겠다는 정도전의 결단은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을 터. 훗날 이방원이 이성계를 잇는 왕이 되기 위해 정도전을 죽이는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인공은 이방원이다. 조선의 정치적 기반인 뼈대를 마련한 정도전도, 백성의 신망을 벽돌 삼아 조선이라는 외관을 세운 이성계도 아니라 두 사람의 간극을 가장 명확히 알고 험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끝내 두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이방원의 시선으로 드라마는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용의 눈물’, ‘정도전’ 등 아직까지 기억되는 이방원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육룡이 나르샤’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이방원을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높은 군주로 그리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미숙하지만 적극적으로 개혁을 하고자 폭주하는 이방원의 인간적인 고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제작진이 그동안의 사극과 다른 관점으로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는 것은 배우 유아인의 힘도 크다. 유아인은 자칫 악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방원의 행동 하나하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 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두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도 잘했다는 칭찬 하나 받기 쉽지 않은 처량한 신세라는 것을 불안한 감정을 담아 표현했다. 이방원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정형화 돼 있지 않고, 그 때 그 때 처한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그리는 유아인의 유연한 연기는 매번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덕분에 유아인의 이방원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이방원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미 뒷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유아인이 어떻게 연기를 할지 지켜보 맛이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흥미로운 이야기거리 외에 부가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부분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극에서 다뤘던 이방원을 위한 해명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 / jmpyo@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