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가 하여가와 단심가를 이렇게 그려낼 줄은 정말 몰랐다.
SBS 창사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연출 신경수)는 조선 건국을 위해 몸을 일으킨 여섯 인물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지난 2일 방송된 36회에서도 팩션사극으로서 ‘육룡이 나르샤’의 진가가 제대로 빛났다.
이날 방송은 정몽주(김의성 분)를 격살하기 위해 선죽교로 향하는 이방원(유아인 분)의 결심에서 시작됐다. 정몽주는 이성계(천호진 분)의 낙마사건을 기회로 삼아, 이성계 파를 모두 쳐내려 한 상황. 당장 정도전(김명민 분)을 비롯한 이성계 파 주요 인사들의 처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방원은 정몽주를 격살하기로 결심했다.
이방원은 호위무사 조영규(민성욱 분)를 데리고 선죽교로 향했다. 같은 시각 삼한제일검 이방지(변요한 분)는 척사광(윤랑/한예리 분)과 마주섰다. 이방지와 척사광은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그 순간 무휼(윤균상 분)이 나타났다. 지난 방송부터 척사광과 마주치며 남다른 관계를 예고했던 무휼은 척사광을 끌어안은 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부터 팩션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기막힌 저력이 드러났다. 역사 속 이방원과 정몽주가 주고 받은 시조 ‘하여가’와 ‘단심가’를, 정몽주 격살 직전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풀어낸 것이다.
고조되는 감정 속에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향해 “백성들에게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라고 절규했다. 이어 “저 만수산 칡넝쿨이 저리 얽혀 있다 한들 그것을 탓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포은 선생과 삼봉 스승님. 두 분이 저리 얽혀 손을 맞잡고 백성들에게 생생지락을 느끼게 해준다면 선생께서 그리 중시하는 역사에 누가 감히 하찮은 붓끝으로 선생을 욕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처절하게 설득했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에 정몽주는 “나를 죽이고 죽여, 일백 번을 죽여보시게. 백골이 다 썩어나가고 몸뚱아리가 다 흙이 되어 먼지가 된다 한들 이 몸 안에 있던 한 조각 충을 향한 붉은 마음은, 일편단심은 가지지 못할 것이네”라고 답했다. 많은 것을 담은 듯한 정몽주의 눈빛은 공허하고도 가슴 저릿했다.
결국 이방원은 조영규를 시켜 정몽주를 격살했다. 내리쳐지는 철퇴와 함께 정몽주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정몽주의 붉은 피가 이방원의 얼굴 위에 튀었고, 화면은 철퇴를 내리치는 조영규, 비극 속에 눈을 감는 이방원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줬다.
이처럼 ‘육룡이 나르샤’는 특별한 대본과 숨막히는 연출, 배우들의 돋보이는 명연기로 ‘하여가-단심가’ 장면을 완성했다. 화면 속 인물들의 묵직하고도 처절한 운명이 TV 앞 시청자의 눈과 귀를 장악했다. 그리고 이들을 생생한 역사 속으로 불러들였다. ‘육룡이 나르샤’라서 가능한 특별한 전개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정몽주 격살 이후 척사광과 무휼, 아버지 이성계와 형 이방우(이승효 분)에게 혹독한 비난을 듣는 이방원, 정도전에게서 본격적으로 돌아서는 이방원까지. ‘육룡이 나르샤’는 시청자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으며 다음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정몽주 격살을 기점으로 조선 건국을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디딘 ‘육룡이 나르샤’ 다음 이야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