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없이 많이 듣고 많이 봐왔던 '선죽교의 비극'이 유아인과 김의성을 통해 명장면으로 재탄생됐다. 쉼없이 몰아치는 연기 향연이 안방 시청자들까지 숨죽이게 만들었다.
유아인은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에서 이방원 역을 맡아 매 회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이방원인지라 유아인이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일지라도 식상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하지만 유아인은 36회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만의 이방원을 완성해내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방원은 어린 시절부터 잔인한 성정을 드러내온 인물이다.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로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정몽주는 물론이고 조선을 건국한 뒤 정도전까지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르는 철혈군주인 것. 역사 속 이방원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간의 드라마 속 이방원은 대체로 일차원적으로 그려져 왔던 것이 사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이방원이 왜 정몽주(김의성 분)를 죽이면서까지 정도전(김명민 분)과 대립하게 되었는지를 촘촘하게 그려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욕망대로, 권력을 가지기 위해 우발적으로 살해를 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괴로워하며 고민을 했는지를 몇 회에 걸쳐 보여주며 이방원이라는 인물에 당위성을 부여한 것. 또한 정몽주와 선죽교에서 대립하는 장면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뜨거운 눈물과 외침은 이방원의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내고 있어 더욱 큰 울림과 짜릿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아인과 김의성이 재해석한 '하여가'와 '단심가'다. 이방원은 “백성들에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같이 얽혀 손을 맞잡고 백성들에게 생생지락을 느끼게 해준다면 누가 감히 하찮은 붓끝으로 선생을 욕보이겠느냐”며 정몽주를 눈물로 설득했다. 하지만 정몽주는 "나를 죽이고 죽여, 일백 번을 죽여보시게. 백골이 다 썩어나가고 몸뚱아리가 다 흙이 되어 먼지가 된다 한들 이 몸 안에 있던 한 조각 충을 향한 붉은 마음은, 일편단심은 가지지 못할 것이네"라고 답했다. 지금껏 우리가 시조로 알고 있던 하여가와 단심가를 너무나 영민하게 풀어낸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저력이 뚜렷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몽주가 전한 "천년의 악명. 자네는 이 정몽주라는 이름과 내일 아침부터 천년동안 얽혀 기록되고 회자될 것"이라는 예언과 "현생에 얽힐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기나긴 역사에 천년 만년 선생과 얽혀 누려보겠다"고 답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방원의 모습 역시 소름 그 자체였다는 평가다.
극 말미 정도전은 정몽주를 역적으로 몰며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눈물로 이성계(천호진 분)를 설득했다. 그리고 정도전과 이방원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극적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선죽교의 비극' 만큼 짜릿하게 전개될 두 사람의 싸움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