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프리오의 몸의 연기, 패스벤더의 말의 연기..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서로 다른 에너지다. 과연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28일(현지시각) 개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과연 누가 영광의 주인공이 될 지 관심이 고조되는 중이다.
특히 이번 시상식의 큰 관전포인트는 남우주연상 부문. 호사가들은 앞서 제 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 등을 비롯해 다수의 비평가협회상과 제 2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남우주연상, 제 22회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상을 받은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그 주인공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과연 디카프리오는 이번에는 상을 탈 만 하다란 것이 중론. '이제 줘야할 때'란 애틋한 응원이 기반에 깔린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전혀 다른 시대의, 어쩌면 상상으로만 가능한 인물이 돼 투혼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다.
'레버넌트'는 그야말로 '디카프리오가 생 고생했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 영화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는 말이 별로 없다. 그도 그럴것이 곰의 습격을 받아 목에 어마어마한 부상을 입어 물을 넘기기조차 힘든 상황이 그가 분 휴 글래스다.
디카프리오는 이런 상황에서 절절한 부성애, 미친듯한 분노의 폭발, 극한에서 발휘되는 치열한 생존 본능 등을 주로 몸 연기로 보여준다. 투명한 색깔의 눈빛은 어느 순간은 핏빛으로 어느 순간은 멍한 회색으로도 보인다. 생존을 위해 죽은 말의 내장을 꺼내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짐승같은 처절함마저도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가 내뱉는 몇몇 대사는 관객을 더욱 관찰하고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 오스카 후보에는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디카프리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로 분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명연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일반 전기영화와는 맥을 달리한다. 고인이 생전 참여한 870페이지 분량의 평전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대사 양이 어마어마한데 197 페이지의 시나리오를 본 대니 보일은 신선한 구성과 아론 소킨 특유의 숨이 멎을 듯한 대사들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아론 소킨의 각본과 대니 보일의 연출이 만난 전기영화는 어떨까 궁금함을 자아냈었는데, 역시 영화는 여타 전기물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패스벤더가 있다.
패스벤더의 잡스는 '말'이다. 스스로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천재라고 생각하는 자존감, 동료에 대한 애증, 일면 소름끼치는 냉정함 속에서도 딸에 대해 지니는 애틋함 등이 많은 대사를 통해 흘러나온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어렵고도 따분할 수 있는 여러 전문 용어와 함께 등장하기에 더욱 보는 이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영화 속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는 잡스처럼.
남들은 같은 사진인 것 같은 수십장의 스틸에서 '다른' 하나를 찾아내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잡스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다. 하지만 시종일간 흘러나오는 그의 딕션에서는 일종의 우아함이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완전치 못한 인간 잡스와 사람들이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잡스가 혼재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회의 장면에서 잡스가 폭발하듯 내뱉는 말들은 관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또 잡스가 애플의 공동 창업자로서 잡스 신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과 벌이는 숨막히는 논쟁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다.
'스티브 잡스'가 일대기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전기 영화로 잡스의 세상을 바꾼 3번의 혁신적 프레젠테이션 무대 뒤 모습이 포인트인 것 처럼, 패스벤더는 쉴새없이 흘러가는 대사 속에서도 그 만의 플로우를 통해 관객들 쫓게 만든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은 냉정한 비니지스맨, 기획과 마케팅 등 전반적인 흐름을 관리하고 비전을 제시했지만 인품이 좋은 천재는 아니었던 그를 딕션의 기술로 완성시킨 건 단연 패스벤더다. 워즈니악을 향해 던지는 '널 용서하겠다'란 말 하나에도 여러 입체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다. / nyc@osen.co.kr
[사진 ]'레버넌트', '스티브 잡스'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