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위즐리가(家)의 장남이 최근 세계 영화계의 가장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불그스름한 진저 헤어에 바싹 마른 몸, 기다란 입매가 인상적인 도널 글리슨은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이하 스타워즈)와 같은 대작에서 주요한 역할을 연기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할리우드판 오달수가 바로 도널 글리슨이다.
확실히 미남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묘하게 눈에 띈다. 그의 매력 포인트인 주황빛 머리 덕도 있겠지만, 작품마다 달라지는 얼굴 때문에라도 도널 글리슨의 필모그래피를 쫓게 된다. ‘어바웃 타임’에서 레이첼 맥아담스와 상큼한 멜로를 연출하던 청년이 ‘스타워즈’의 헉스 장군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다.
1983년생, 한국 나이로 서른 넷이지만 나이에 비해 표정 주름이 많은 편이다.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얼굴 위로 그어지는 그 선들은 도널 글리슨이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몰입해서 연기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와도 같다. 수 년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소설 속 인물로 큰 인기를 얻은 뒤 많은 작품에서 ‘잘생김’을 연기하며 세계적 스타가 됐던 것처럼, 도널 글리슨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 브렌단 글리슨과 함께 출연했던 ‘해리포터’ 시리즈 이후로, 그가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 5개를 꼽아 봤다.
# ‘어바웃타임’
성인이 된 날 아버지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가문 대대로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듣게 된 팀(도널 글리슨 분). 평생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는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런던에서 만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에게 첫눈에 반한 팀은 실수를 할 때마다 시간을 돌려 만회하는 것으로 사랑을 쟁취한다.
도널 글리슨은 이 영화에서 실제 나이보다 한참 어린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짧게 깎은 머리, 마른 팔다리와 어색한 듯한 몸놀림은 배우와 역할 사이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돌려냈다. 워킹타이틀 작품 특유의 영상미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청량감을 더하며 호평 받았다.
# ‘프랭크’
마이클 패스밴더, 매기 질렌할 등 이미 영화계에서 정점을 찍은 배우들과 도널 글리슨이 함께 했던 작품. 멋진 록스타를 꿈꾸지만 재능은 커녕 경력도 부족한 존(도널 글리슨 분)이 한 인디밴드에 대타 멤버로 들어가게 된다. 존은 이 밴드의 리더 프랭크(마이클 패스밴더)의 재능에 깊이 빠져 든다. 그러나 항상 가면을 쓴 채 자신 안으로만 침잠하는 프랭크에게 답답함을 느낀 존은 그와 갈등을 빚게 된다. 도널 글리슨은 이 영화에서 순수한 얼굴에 점점 현실이 묻으며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탁월히 표현해냈다.
# ‘엑스마키나’
이번에는 천재적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칼렙(도널 글리슨 분)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인공지능 분야의 저명한 개발자 네이든(오스카 아이삭 분)의 새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발탁된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요새 같은 연구소에서 칼렙은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 분)와 만난다. 처음에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으로 마주했지만, 칼렙은 점점 에이바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살기 위해서 자신보다 더 머리가 좋은 이를 이겨야 하는 극한의 상황과 혼란을 극복하는 칼렙 역으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도널 글리슨은 이 영화에서 만난 오스카 아이삭과 ‘스타워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상대역인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유수의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 ‘스타워즈’
많은 팬들을 열광케 한 10년 만의 ‘스타워즈’ 시리즈에도 그가 등장했다. 도널 글리슨은 이 영화에서 퍼스트 오더 소속의 스타킬러 기지 지휘자 제너럴 헉스로 분했다. 헉스(도널 글리슨 분)는 굳게 다문 입과 두피에 딱 붙인 머리스타일로 빈틈 없는 이미지를 조성했다. 헉스가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마치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 연설 장면이었다.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악역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분)을 내부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냈다.
# ‘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첫 오스카를 안겨줄 영화로 예측되고 있는 ‘레버넌트’에도 도널 글리슨이 출연했다. 서부 개척시대보다도 앞선 19세기,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도널 글리슨은 앤드류 헨리 대위 역을 맡았다. 사냥꾼 무리의 대장으로서 대원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를 견제하는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를 저지한다. 글래스가 곰의 습격에 전신이 찢겨 괴로워할 때도 대원들과 힘을 모아 그를 들것에 실어 날랐으며, 살아날 가망이 보이지 않자 결국 그의 임종을 지켜줄 사람을 모집하기도 하는 따뜻함이 있다. 살아 돌아온 글래스를 보호하고 정의를 위해 총을 겨누는 그의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을 표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레버넌트’ 런던 프리미어 현장, 각 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