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안방에서 보고 있는 요즘이다. tvN 금토 드라마 '시그널' 덕분이다. '시그널'은 매회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으로 '응답하라 1988' 후속작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에피소드가 주효했다.
지난달 22일 첫 방송된 '시그널'은 과거로부터 걸려온 무전 덕에 그 시절과 현재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조진웅이 과거의 이재한 형사로, 이제훈이 현재의 박해영 경위로 분해 김혜수와 쫄깃한 호흡을 맞추고 있다.
6일까지 6회가 전파를 탔는데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굵직굵직한 사건은 총 세 가지다. 김윤정 유괴사건,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 대도사건이 그것. 펜을 든 김은희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에피소드지만 어딘가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
1997년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다. 9살 강남의 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박나리 양은 유괴됐고 범인은 2천만 원을 요구했다. 나중에 잡힌 유괴범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씀씀이가 큰 탓에 빚이 쌓여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그널'이 다룬 김윤정 유괴사건의 범인도 여자다. 정신병원 간호사로 일한 윤수아(오연아 분)는 사치스러운 성격에 인격장애까지 있어 범행을 말리는 남자 친구까지 살해하고 김윤정 역시 해쳤다. 비록 유괴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살인에 대한 죗값을 받으며 국민들에게 공소시효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재한(조진웅 분), 박해영(이제훈 분), 차수현(김혜수 분)이 함께 해결한 '시그널' 속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은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만 골라 죽인다는 괴담까지 돈 사건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시그널' 속 형사들이 힘을 합쳐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범인을 잡았을 때 시청자들은 더욱 통쾌했다. 정의는 살아 있다는 것,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카타르시스를 안방에 안겼다.
세 번째 사건인 대도 사건은 6회 현재 사건을 풀어가고 있다. 나비효과로 차수현이 죽은 상황에서 이재한과 박해영은 진범을 잡아 현재를 되돌리고자 의기투합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재벌집 아들 한세규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고 이재한이 "저 자식 반드시 잡을 겁니다"고 눈물로 다짐한 채 6회가 끝났다.
이번 대도 사건은 말 그대로 '대도' 조세형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벌 회장과 고위 관료 등 부유층과 권력층만을 대상으로 각종 귀금속과 수억 원대의 현금을 훔치는 등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였던 인물.
'시그널'에서는 이를 재벌가의 역겨운 상황으로 다르게 풀었지만 '대도'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여기에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라는 실제 비극까지 한영대교 붕괴사고로 조심스럽게 덧붙여 극에 현실감을 더했다.
'시그널'이 안방에 안기는 재미는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발생한다. 현실에서는 풀지못한 연쇄살인사건의 해결, 반면 20년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은 씁쓸한 현실 등이 시청자들을 절로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comet568@osen.co.kr
[사진] JTBC 제공, '시그널'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