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은 달라진 자신을 실감한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를 통해 일제강점기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청춘을 쏟았던 송몽규는 안타깝게도 현재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지 못 한다. 우리는 그를 2016년 스크린에서 박정민의 얼굴과 목소리로 처음 만나게 됐다.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의 꿈을 품고 살다 간 윤동주(강하늘 분)의 청년 시절을 다룬 작품. 질투, 열등감, 패배, 승리감 등을 느끼는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특히 그가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은 박정민이 연기한 윤동주의 사촌이자 벗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다.
박정민은 최근 OSEN과 만나 언론시사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하늘이랑 저는 덜덜덜 떨었다. 청심환 먹고 영화를 봤다. 감독님은 늘 저랑 하늘이를 많이 칭찬해주셨다. 그런 좋은 말씀들이 사전에 없었으면 못 봤을 거다. 그 말이 용기가 돼서 꾸역꾸역 앉아서 본 거다”고 말했다.
언론시사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 앞서 눈물을 흘렸는데 당시 마음은 송몽규에게 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그는 “북간도에 위치한 그분들의 묘소에 가서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함부로 찾아와서 죄송하고 열심히 해서 누가 안 되게 잘 해보겠다고 했는데 누가 된 것 같은 마음이었다. 마지막에 송몽규 선생님의 사진이 올라올 때 그런 마음 때문에 울먹거렸다. 화장실 가서 미리 울고 나왔어야 했는데 거기 가서 창피한 행동을 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말도 조심하게 된다”며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들고 앞으로 있을 행사들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분들의 온전한 마음에는 그 누구도 100%로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이준익 감독의 ‘송몽규는 박정민이다’는 한 마디였다. 물론 박정민은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는 “배우를 자유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을 주는 말이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송몽규 선생님이 되는 거니까 허투루 못하겠더라. 제가 원래 그런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더 철저하게 분석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검수하고 감수받았다. 공들여 쌓은 탑 같은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역시 가장 공들인 장면은 마지막 취조하는 신이다. 대사에서도 책임감이 넘쳐났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메시지를 꼭꼭 담아낸 대사들이다. 이와 관련해 박정민은 “이 장면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 같았다. 매 장면 다 잘해야 했지만 이것들이 쌓여서 마지막 신을 이루는 기분이었다”며 “그래서 가장 힘들었고 공들였고 부담됐던 장면이다”고 말했다. 송몽규의 묘소를 다녀온 보람을 그때 느꼈다고. 그는 “그분의 묘소가 싹 스쳤다. 건조하고 휑한 묘였다. 이분은 더 기억돼야 할 사람인데 ‘그런 묘는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 억울한 일이야’라는 감정이 훅 올라오더라. 촬영을 끝내고 나서 선생님이 날 도와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윤동주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아름다운, 송몽규는 과정이 결과보다 아름답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이런 고민과 마주한다. 박정민은 “두 가지 모두 달성하는 건 욕심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목표지점을 향해 두드리고 내 자신을 깎고 달려가는 자체가 아름다워야 나중에 결과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됐을 때 떳떳할 것 같다”며 “물론 그 중에 실수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그래도 돌아봤을 때 누가 따라오고 싶은 길을 만들고 싶다. 힘들어질 때마다 지금의 마음을 생각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때문에 박정민이 이번 영화로 바라는 1순위도 송몽규에 대한 관심이다. 그는 “‘동주’가 내게 큰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물론 안 한 건 아니다. 열심히 하려고 했고 열심히도 했다. 그러나 작품과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면서 그 마음이 없어져버렸다. 이 작품을 통해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무례한 마음인 것 같다. 관객 분들도 이런 마음을 가져가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변화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저부터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지도가 생겨서 좋은 작품, 큰 역할도 하고 싶어 했던 생각이 이 영화로 바뀌었다”며 “과정이 아름다운 배우가 되고 나서야 내가 부끄럽지 않을까. 송몽규를 연기했다는 부담감, 아주 조금이나마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여전히 박정민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송몽규 사진이다. 작품에 합류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바꿔본 적이 없다. / besodam@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