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와 조진웅은 과연 죽을까 살까' 매주 금 토요일 저녁을 애타게 기다리는 요즘이다. '응답하라 1988'로 시작돼 '시그널'로 계속되는 신종 'tVN 금토병'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중독성도 엄청나게 높다. '응팔'은 남편 찾기로 시청자 진을 빼놓더니 '시그널'은 과거 대형 미제사건들의 범인을 찾느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시그널'이 대한민국 스릴러 드라마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소재 참신하고 전개 빠르며 연기와 연출 모두 뛰어나다. 특히 박해영 역 이제훈, 차수현 역 김혜수, 이재한 역 조진웅 등 남녀 주연 세 배우의 인생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드라마 방영 전부터 가장 기대를 모았던 이제훈은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등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극중 캐릭터도 조진웅에 눌리고 김혜수에 차이면서 좀처럼 존재감을 높이지 못하는 중이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그널' 크레디트와 포스터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출연진은 이제훈이다. 주조연을 통틀어 그가 캐스팅 0순위에 중요도 1번이라는 얘기다.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프러파일러 박해영 경위 역을 맡고 있다. 박 경위란 인물, 그 성장 과정부터 경찰 입문까지 모든 삶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어려서는 같은 초등학교 예쁜 여자친구가 납치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이를 경찰에 알리려다 좌절하면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경찰 조직을 극도로 불신하는 그가 경찰을 택한 배경이 아마 여기에 있는 듯 하다.
그런 박 경위는 우연히 증거물 폐기 자루에서 옛날 무전기 하나를 입수한다. 이 무전기? 과거와 연결된다. 교신은 연도와 날짜 불특정이되 시간은 오후 11시23분 고정이다. 1~2분 가량 지속되며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전기가 알아서 켜졌다 꺼진다. 상대는 1980년대 중후반에서 2001년 실종 직전까지의 강력반 형사 이재한.
이제훈이 맡은 박 경위가 얼마나 복잡다단한 캐릭터인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경찰을 가장 싫어하는 귀신 씌운 경찰이다. 웬만한 연기력으로 박 경위 역을 맡았다가는 드라마 자체를 말아먹기 십상일 것이 분명하다.
극중 이제훈은 2015년 현대 사회를 사는 프로파일러로서 심령소설에나 나올법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주위를 설득하고 움직여야 된다. 자신의 무전 실수로 과거가 변하면 현대도 바뀌면서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늘 멋있게 보여야할 1번 주연 이제훈이 드라마 내내 울고 앓고 징징거리며 뛰어다닐수 밖에 없는 이유다.
와중에 그를 돕는 두 선배 형사 역의 조진웅과 김혜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고 쿨하다. 단순 명쾌하고 의리와 열정을 뿜어내면서 아침 이슬처럼 순수한 매력을 뽐낸다. 이제훈이 이 둘 사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히 지키고 소화하는 덕분에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제훈은 찌질한 프로파일러처럼 보인다. 혼잣말을 일삼고 터무니없는 주장과 항변(십 수년전 과거에서 무전으로 알려온 사실을 누군들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을 반복하느라 힘을 다 빼고 있다. 혼자 자책하고 홀로 고민하며 사방팔방 원군을 찾아 헤맨다.
시청자들에게 생소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 주인공이 왜 저래 라고. 하지만 '시그널' 초 중반에서 이제훈이 보여야할 캐릭터 묘사의 폭은 지금이 최상이다. 책상 머리에 앉아야할 프로파일러가 성룡처럼 차고 뛰고 날면서 범인 검거하고 보신주의 경찰 수뇌부를 압박했다면 그런 코미디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제훈은 배우 데뷔 후 처음으로 '연기력 논란'이라는 감기를 '시그널' 초반 심하게 앓고 지나갔다. 연기를 너무 잘 하는 것도 병이라면 병인 셈이다./mcgwire@osen.co.kr
[엔터테인먼트 국장]
[사진] '시그널'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