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우 누군데 저렇게 잘하지?"라고 하며 궁금해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데뷔 7년차 배우가 됐다. 그리고 이 흘러간 시간만큼, 또 그 안에서 이뤄낸 작품 수만큼 연기자로서 성장하고 또 성숙해졌다. 나날이 단단하게 아물어져 가는 박지연에겐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박지연은 현재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에서 순항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에포닌 역을 맡아 열연중이다. 이 '레미제라블'은 박지연이라는 배우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로 박지연은 초연 당시 에포닌이라는 제 옷을 갖춰 입고 생동감 있는 연기와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오디션 때부터 공연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에포닌으로 처절하게 살았던 박지연은 2013년 뮤지컬 시상식의 여우 신인상을 모두 휩쓰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후 '고스트'와 '원스'를 통해 연기의 진폭을 넓힌 박지연은 뮤지컬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여배우로 우뚝 섰다.
박지연은 초연에 이어 다시 에포닌을 맡아 대구와 서울 공연을 약 4개월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도 원 캐스트다. 초연이야 모든 배역이 원 캐스트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더라도 재연에서부터는 그런 상황도 아니건만 왜 굳이 원 캐스트를 고집했을까. 이를 물으니 박지연은 "에포닌은 제 꺼라는 생각이 컸다. 초연부터 해온 역할이라 애착이 많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더블 캐스트하기엔 부끄러운 역할이기도 하다. 앙상블도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긴 하지만 저만 더블 캐스트를 할 수는 없는거다. 제가 더블 캐스트라면 코제트나 마리우스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연습 과정에 있어서는 원 캐스트가 좋다고 생각한다. 말들어가는 과정에서 집중할 수 있고 창의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보다 더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원 캐스트가 좋다."
하지만 이로 인해 거의 쉬는 날 없이 강행군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적인 부담도 상당할 터. 박지연 역시 "1년 동안 어떻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대구 공연을 갔다 오서 서울 공연 리허설을 할 때 첫 공연처럼 했다. 스트레스가 컸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리허설, 프리뷰는 물론이고 일주일에 9회 공연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박지연은 이 같은 힘겨움이 '레미제라블', 특히 에포닌의 처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핍이나 부족함이 있어야 이를 보완할 때 집중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2막에서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뮤지컬 넘버 중 하나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사만다 바크스가 비를 맞으며 노래하는 장면으로도 유명한 이 'On my own'은 박지연의 탁월한 재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넘버로 손꼽힌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은 크고 웅장한 공연장을 가득 메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박지연만의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더해져 에포닌의 안타까운 상황이 더욱 극대화되곤 한다.
분명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박지연이 이 에포닌을 완성하기 위해 흘린 땀과 열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양을 자랑한다.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늘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그리고 이번 재연에서는 에포닌의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표현하는 데 주력을 했다고 밝혔다.
박지연은 "아무래도 여러 번 불러본 넘버라 아무리 실수가 생겨도 순발력 있게 대처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재미난 일이 참 많았다. 워낙 많이 불러 감정을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대처를 다 했던 것 같다. 이런 순발력도 많이 불러봐야 생기는 것 같다. 지금껏 큰 탈 없이 넘버를 잘 소화하고 있는데, 그만큼 멘탈이 강해진 것 같다"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실수를 하면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다음 공연을 망쳐서는 안 되니까 최대한 내 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정신력이 생겼다. 이번에는 소리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소리가 40이면 감정은 60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소리가 무너졌을 때보다 감정이 부족했을 때 생기는 죄책감이 더 크다. 그만큼 '레미제라블'은 대충하면 안 되고, 요령을 피워서도 안 되는 공연이다."
그 중에서도 박지연은 에포닌이 죽는 장면을 예전보다 더 많이 신경쓰고 있다고 밝혔다.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에포닌의 고통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다고. 그는 "에포닌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정말 행복하게 죽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때 흘리는 눈물은 슬픔보다는 아픔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죽어가면서 부르는 노래 속에 고통을 계속 가져가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지연은 "초연 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다르기 때문에 에포닌도 달랐으면 했다"며 연기적으로 고민했던 부분을 고백했다. 그 때보다 더 많이 성숙해졌고, 또 사랑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사랑을 모르는 에포닌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제가 마르고 연약해보이는 것이 있어서 모든 연기를 이와는 반대로 하길 바랐다. 여성스러움이 보여서는 안 된다. 예쁜 소리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칠기를 바랐기에 초연보다 더 힘든 면이 있었다. 마치 사포로 밀어낸 듯한 인물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보다 에포닌이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연기를 할 때도 에포닌의 삶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고 전했다.
박지연은 달라진 마음의 예로 좋아하는 넘버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A little fall of rain'을 가장 좋아했는데 요즘은 'In my life'와 'A heart full of love'가 좋다는 것.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자신의 것이 아니라도 가장 주의 깊게 듣는 넘버라고 말했다. 특히 코제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는 넘버인 'In my life'는 초연 때도 눈물이 날 때가 있었는데 재연하면서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박지연은 현재를 심적으로 많이 변화하는 시기라고 고백했다.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고, 그래서 모든 것을 더욱 진지하게 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전에는 저 자신을 위해서만 일을 했는데 지금은 저를 지켜봐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다. 사실 저는 정체되어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안정적으로, 늘 하던 것을 하고 먹던 것을 먹곤 했는데 이제는 꼭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로 변신을 하고 싶다"고 그간 느껴왔던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사실 박지연은 지난 해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브라운관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순애(김슬기 분)의 귀신 친구로 등장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과시하며 깨알 재미를 불어넣었던 박지연은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항상 밝게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 생각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뮤지컬 '맘마미아!' 연습도 병행하고 있는 박지연은 "개인적으로 엄청 사랑하는 작품"이라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다시 소피 역을 맡게 된 박지연은 "나중에 이 공연을 보면 이상할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행복한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엄마인 도나 역을 꼭 하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런쓰루를 하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레미제라블'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물의 겹필이나 연민을 계속 찾게 되더라. 세 명의 중년 여자는 물론이고 소피의 뒷모습까지도 슬펐다. 소피가 밝아야 하는 역할이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소피 삶의 어두운 면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 것 같아서 기대가 많이 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지연은 이번 '맘마미아'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소녀시대 서현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박지연은 "밝고 싱그럽다. 연습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저는 '고스트'에서 아이비 언니나 주원 오빠가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럼에도 놀랐다. 중국을 왔다갔다 하는데도 오히려 연습을 더 열심히 해온다.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기도 한다"라고 극찬했다.
출연했던, 혹은 출연할 작품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던 박지연의 마지막은 역시나 '레미제라블'이었다. 계속해서 원 캐스트로 무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에 '레미제라블'한국 공연을 보지 못한 그는 "정말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연기 하는 사람으로서 완성을 해내고 싶다. 다음 시즌에 판틴을 한다면 그 때도 원 캐스트를 하고 싶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레미제라블'은 저를 알리고 크게 사랑 받은, 특별한 작품이다. 그래서 계속 하고 싶다. 제 능력이 되는 한 에포닌을 뿌리깊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고, 그런 뒤에 판틴과 떼나르디에 부인까지 해보고 싶다. 그만큼 '레미제라블'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parkjy@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