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과 허준 콤비에게 중계의 신(神)이 내린 걸까. 드라마 ‘추노’ 장혁이 달리는 장면을 스포츠 중계로 풀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이란 말인가. 즉흥적인 상황에서 연륜은 더욱 빛났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 했지만 신선한 웃음을 주는 덴 일등공신이었다.
설특집으로 기획된 KBS 2TV ‘언(言)금술사’는 입담으로 유명한 방송인들이 출동해 무작위로 나오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프로그램 등을 보고 100인의 판정단에게 중계하는 프로그램이다. 판정단은 아나운서, 개그맨, 작가, PD 지망생 등 차세대 미디어 전문가로 구성돼 전문성을 높였다.
지난 10일 방송분에서는 서기철과 이병훈, 이병진과 허준, 장동민과 홍진경, 조세호와 남창희, 김찬호와 지상렬, 정성호와 조우종 등 총 6팀이 나섰다. 1라운드에서 1등을 차지한 팀과 2라운드에서 1등을 차지한 팀이 결선에서 맞붙어 최종 1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이 중 1라운드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단연 이병진과 허준이었다. 세 번째로 비교적 앞 순서로 나섰지만 처음부터 고득점인 97점을 얻어 기를 눌렀다. 이 팀의 콘셉트는 스포츠 중계. 이병진과 허준의 입담으로 드라마 ‘추노’는 육상경기와 펜싱 플뢰레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UFC 경기로 재탄생했다.
장혁과 김지석이 달리는 장면은 육상경기를 펼치듯 중계됐고, 장혁과 오지호가 칼로 맞붙는 장면은 펜싱 플뢰레로 중계됐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여배들끼리의 육탄전이 펼쳐졌는데, 이를 UFC로 연결했다. 기술을 설명하며 예능적으로 풀어낸 완벽한 중계라고 할 수 있다.
무작위로 키워드만 보고 선정한 영상이었기 때문에 더욱 박수 받을 만했다. 이에 베테랑 서기철도 칭찬을 늘어놓을 정도.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할 때 연륜이 묻어나는 것이다.
특히 ‘추노’에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화면이 넘어가는 도중 등장한 다람쥐 다큐멘터리 클립 영상에서 순발력이 가장 빛났다. 이병진은 “현재 사정이 원활하지 못했다”며 자연스럽게 사과하며 넘긴 것.
안타깝게 2라운드에서는 순서운이 없어 우승을 놓쳤지만 무작위 영상을 입담만으로 중계한다는 주제에 가장 걸맞은 팀은 이병진과 허준 팀이었다. 설특집으로 기획된 ‘언금술사’가 정규 편성이 된다면 일등공신은 바로 이 팀이 아닐까. / besodam@osen.co.kr
[사진] '언금술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