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동주가 스크린에서 되살아났다. 스크린에서, 아니 영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윤동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동주'는 흑백 사진 속으로만 기억되던 윤동주를 영상으로 되살려 낸 최초의 시도였다.
최초의 시도를 '왕의 남자', '사도' 등의 메가폰을 잡았던 이준익 감독이 해냈다. '거장'이라 불릴 만큼 충무로에선 알아주는 감독이었지만 최초의 시도는 쉽지 않은 법. 게다가 전 국민이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을 살려내는 일이었으니 이준익 감독에게 '동주' 작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기에 이준익 감독은 영화에 대한, 그리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으로 갖추며 작업을 시작해나갔다. 예의를 갖춰야만 '동주'를 제대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장의 첫 번째 예의는 흑백이었다. '동주'는 완벽한 흑백 영화다. 윤동주도 처음, 흑백 영화를 만드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어야만 '동주'가 가능할 거란 생각을 했단다. 흑백 특유의 꾸미지 않은 소박함이 윤동주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방법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저예산이다. '동주'는 여타의 상업영화와 비교해 현저하게 적은 예산으로 촬영된 영화. 상업영화의 화려함은 '동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판단이었다.
"한 마디로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면 감독 인생이 힘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죠. 하하. 모든 국민들이 알고 좋아하는 시인이니까요. 그래서 흑백과 저예산이라는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정중하게 모시는 방법은 흑백과 저예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흑백이 가지고 있는 꾸미지 않은 소박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업적 과포장이나 영화적 과도한 시도나 이런 걸 해버리면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영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캐스팅 역시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에게 표하는 예의이기도 했다. 사실 '사도'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유아인이 '동주'를 굉장히 탐내했었단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의 선택은 강하늘이었다. '누가 연기한 윤동주'라기보다는 '윤동주를 연기한 누군가'가 되길 원했단다. 물론 캐스팅 이후 강하늘이 대세가 되어버려 당황하긴 했지만.
"강하늘은 스무 살 때 '평양성'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는데 그때도 연기를 잘했었죠. 지금은 얼굴이 섹시해졌어요. 세련된 미도 있고. 그리고 뭐랄까, 시인들이 지니고 있는 유미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잘 어울리죠. 강하늘 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유아인이 탐을 냈었는데 윤동주는 유명하지 않은 배우가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유아인이 연기한 윤동주'보다는 '윤동주를 연기한 누군가'가 되길 원했어요. 강하늘은 캐스팅될 때 이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어요. 하하."
이렇게 거장 감독의 예의로 만들어진 '동주'는 이 시대 청춘들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윤동주야말로 암흑의 시절이었던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청춘.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지금의 청춘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는 영화 속 윤동주와 함께 등장하는 송몽규라는 인물에게서 여실히 드러난다. 독립운동을 하며 일생을 바쳤지만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송몽규,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하며 치열한 반성을 해왔지만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청춘들에게 이준익 감독은 제 나름대로의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있다.
"젊은 친구들한테 선배가 된 입장에서 과정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나친 성장 주의를 50년 동안 겪어오면서 오면서 성장 만능주의의 폐해를 잘 알고 있죠. 성장보다는 성숙이 필요한 시대이고 과정이 중시되는 시대, 그게 좋지 않나 싶어요." / trio88@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