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소녀는 어느새 싱그러운 20대 여인이 됐다. 밝은 햇빛 아래 살포시 웃는 고아성의 모습에서는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뚝뚝 떨어졌다. 배우의 실제 성격을 많이 참고 했다는 영화 '오빠생각' 속 주미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아성은 '오빠생각'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고아원 원장 주미 역을 맡았다. 외국 유학까지 갔다왔다는 설정으로 보면 걱정없이 자란 부잣집 딸이 분명한데, 똑 부러지게 고아원 살림을 끌어가는 모습에 반전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연출은 맡은 이한 감독에 따르면 주미의 캐릭터는 실제 고아성의 모습을 참고한 부분이 많다. 정작 배우 본인은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고.
"나중에 홍보할 때 알았어요.(웃음) 그래서 정말 내 캐릭터를 많이 담으신 걸까? 싶어서 촬영을 다 하고 나서 생각을 했는데 주미라는 캐릭터가 와 닿을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보면 막사 안에서 한소위랑 같이 맥주 마시는 신이 있는데, 거기서 야한 잡지를 보고 '어머?' 이러는 장면이 있어요. 처음에 연기할 때 되게 민망해하고 그랬는데, 감독님이 '주미는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 같다, 놀리기도 하고, 당당한 여자'라고 하실 때, 그 때 많이 와 닿았어요. 그 때 감독님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으시구나, 싶었죠. 뻔하게 그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으시구나 느꼈어요."
보통 관객들은 '오빠생각'을 보기 전엔,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오빠'가 임시완이고, 그를 '오빠'라고 부르는 여동생이 고아성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혹, 두 사람의 멜로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오빠와 여동생 역할은 아역 배우 정준원과 이레의 몫이고, 한상렬(임시완 분)과 박주미(고아성 분)의 로맨스는 풋풋하게 스쳐지나갈 뿐 완성되지 않는다.
"아쉬움은 없어요.(웃음) 원래 시나리오가 지금과 똑같았거든요.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거 같아요. (생략) 임시완 오빠와는 호흡이 좋았어요. 굉장히 이성적이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라서 많이 배웠어요."
빠지지 않는 것이 상대역들을 비교하는 질문이다. 공교롭게도 고아성의 최근 파트너들은 연기력에서 인정을 받는 '연기돌' 출신이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함께한 이준, '오빠생각'으로 함께 한 임시완이다.
"임시완 배우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진지하고. 뭐랄까?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준비성이 굉장히 철저해요. 이성적인 면에 감동했어요. 이준 오빠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웃음) 작년인데 이준 오빠는 재밌게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저에게 많이 물어봤고, 같이 고민을 많이 하면서 촬영했었어요."
고아성은 '오빠생각'을 "아이들의 공이 큰 영화"라고 설명했다.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전면에 나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겸손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에 대해 '리액션'을 하는 게 저로선 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어려움이 없고 아이들과 연기를 할 때, 제가 아이들을 대할 때, 진심만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크게 부담은 없었어요."
아역 배우들과는 많이 친해졌다. 혹 촬영장에서 "엄마처럼" 아역 배우들을 돌봤던 게 아닌지 묻자 고아성은 "친구처럼" 친했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볼 때 다른 성인 동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촬영하기 전에는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없었어요. 제 주변에도 어린 친구들이 없어서 어색할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동료처럼? 처음에 만났을 때도 선·후배가 아니라 동료처럼 만나 연기 호흡을 맞췄어요. 지금은 너무 친해져서 친구처럼 됐어요."
아역 배우들과 친해지면서 고아성에게는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다. 아이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다보니, 말이나 행동을 하나하나 조심하게 된다는 것.
"제가 TV에 나온다거나 인터넷 기사에 나온다거나 그러면 그 친구들이 '잘 봤다'고 연락을 해요. 행동 하나, 말 하나를 조심하게 돼죠. 이 친구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부담스럽거나 책임감이 있는 건 아닌데, 좋은 쪽으로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새로운 인연들로부터 받은 영향이죠."
차기작은 국내와 해외 작품을 구분하지 않고 보고 있다. 해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2015) 같은 작품이다. 80~90년대 닥터 드레, 이지 E, 아이스 큐브, MC렌, DJ 옐라 등 힙합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고아성의 말처럼 "기록에 의의를 둔 영화"다. 스물 다섯, 호기심 많은 젊은 여배우의 광범위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답이었다.
"실화를 그린 영화지만 다큐멘터리처럼 찍었어요. 실제 주인공의 아들이 출연하기도 하고,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해요. 랩도 너무 잘하고, 연기도 너무 잘하고요. 너무 새로운 감명을 받았어요. 그 영화는 영화적인 어떤 기술이나 연기가 많이 보인다거나 그게 아니라. 기록에 의의가 있는 영화에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20대를 연기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새로웠어요. 언젠가 그런 영화에 참여해 보고싶어요." /eujenej@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