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시그널’이 지상파에서 방송했다면 이렇게 호평을 받았을까요?”(지상파 드라마 PD A 씨)
tvN 드라마가 새해에도 거침 없이 질주 중이다.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흥미로운 로맨스와 실감나는 대학생활로 재미와 공감을 사고 있고,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영화를 보는 듯 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에 주력했던 tvN은 장르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가족 드라마 형태를 입혔고, OCN에서 주로 하던 장르 드라마를 좀 더 대중적인 색깔로 만든 드라마들이 잇따라 성공하고 있다. ‘나인’에 이어 ‘시그널’ 역시 장르 드라마인데 좀 더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안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이야기를 가미했다. ‘시그널’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가족의 아픔을 넣어 공감대를 높인 것처럼 말이다.
시청률 20%를 넘봤던 ‘응답하라 1988’을 제외하고 tvN 드라마들은 지상파 드라마 성공 기준으로 보는 평균 시청률 두자릿수를 넘기는 일이 많지 않다. 보통 7~8%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해도 대박 흥행으로 보기 때문. 개국 초기 시청률 1%만 넘어도 고무적인 분위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tvN이 지상파 3사와 비등한 경쟁을 하는 지금의 격세지감을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다.
확실히 tvN은 장기였던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해 빠르고 감각적인 이야기를 내세웠고, 망하더라도 지상파 방송사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대박을 일궈내고 있다. 다만 tvN의 거침 없는 상승세로 인해 자꾸 비교 대상이 되는 지상파 방송사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tvN이 처음부터 기획을 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차치하더라도,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시청자층을 끌어들여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로서는 tvN처럼 파격적인 실험을 하기 쉽지 않은 구조인 것.
또한 사기업인 tvN의 공격적인 홍보, 그동안 수십년간 독점적인 콘텐츠 공급자로서 우위를 점한 지상파 방송에 비해 대중의 기대치가 낮은 tvN의 유리한 위치가 작은 성공도 큰 성공으로 여겨진다는 게 지상파 방송사들의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항변이기도 하다.
실제로 실험 정신이 투철했고 작품적 완성도가 높아 SBS 내부 평가가 좋았던 ‘마을’의 경우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였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높은 완성도로 인해 SBS 내부에서는 고무적인 평가를 받았고, 향후 다양한 장르 드라마를 내놓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높은 다른 지상파 드라마나 ‘마을’보다 시청률이 낮은 tvN 드라마에 비해 화제성이 낮아서 수작에 걸맞은 대중의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요즘 많이 회자가 되는 ‘시그널’ 역시 마찬가지다. 잘 알려진대로 사실 SBS에서 편성을 검토했던 작품이다. ‘시그널’이 tvN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김원석 PD의 뛰어난 연출력이 가장 큰 몫을 했다. ‘미생’을 크게 히트시킨 김 PD는 ‘시그널’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명품 연출력’을 뽐내고 있다. 김은희 작가가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지만 그동안 몇 편의 장르 드라마에서 개연성이 부족하고 다소 뒷심이 떨어져 용두사미가 됐던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SBS 내부적으로 편성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 그 사이 tvN에서 편성을 하게 됐다. tvN으로 짐을 푼 후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만약에 SBS에서 원래대로 ‘시그널’을 편성했다면, 지금의 ‘시그널’처럼 큰 성공을 거뒀을지는 미지수인 것. 드라마의 성공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만약에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실망감이 크고 좀 더 기대치가 까다로운 안방극장 분위기상 ‘시그널’이 SBS에서 방송됐더라면 지금의 호평 일색의 분위기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최근 OSEN에 “tvN이 시청자들의 빠르게 변화하는 입맛에 맞게 재밌는 드라마를 잘 만드는 것은 맞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가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라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도 높지만 작품 외적으로 홍보나 대중의 인식이 tvN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jmpyo@osen.co.kr
[사진]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