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의 그림자가 이토록 길다.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 이어 tvN '시그널'도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권력층의 모습을 보여주며 놀라움을 안겼다. 더불어 '사이다'처럼 시원한 결말까지,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베테랑'의 미덕을 TV 안에서 재현했다.
지난 13일 오후 방송된 '시그널'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신다혜(이은우 분)를 찾아낸 차수현(김혜수 분)과 박해영(이제훈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차수현과 박해영은 신다혜가 단순 자살이 아닌 타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신다혜의 엣 연인이 그를 발견했다는 카페에 있던 책 표면의 지문이 결정적 단서였다. 얼마 전 어떤 손님이 두고 갔다는 이 독일어 책에는 신다혜의 것과 일치한 지문이 묻어 있었고, 차수현과 박해영은 그가 살아있다고 확신했다. 이후 미제사건전담팀은 "이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신다혜 본인이다"라며 신다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신다혜의 실종은 '대도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가 죽기 전 팔았던 장물이 '대도사건' 당시 사라졌던 재벌가의 보물 중 하나였기 때문.
미제사건전담팀은 결국 신다혜의 실체를 밝혀냈다. 신분을 감추고 독일로 도망쳤던 그는 아픈 어머니에게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고, 신다혜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에 병원을 찾은 차수현과 박해영이 그를 발견했다.
살아있던 신다혜를 통해 '대도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당시 검사장의 아들이었던 한세규(이동하 분)는 자신의 성관계동영상이 퍼지는 것과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친구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를 알게 된 신다혜는 그가 훔친 물건들을 다시 훔쳐 달아났다. 이후 한세규는 복수를 위해 신다혜를 찾아서 죽였는데, 그 인물이 신다혜가 아닌 그와 함께 살던 김지희였다. 이후 진짜 신다혜는 김지희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독일로 건너 가 20년을 살았다.
'시그널'이 '베테랑'과 겹쳐보였던 것은 한세규라는 존재 때문이다. 젊은 시절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아버지로 둔 2세들과 매일 밤 파티를 벌였고, 그 안에서는 온갖 추악한 일들이 벌어졌다. 자신의 쾌락과 안위를 위해 마약 흡입에 성폭행,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그의 모습은 '베테랑' 속 조태오의 모습과 비슷했다.
재밌는 사실은 비슷한 시기 방송되고 있는 '리멤버'에도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는 사이코패스 인격을 가진 재벌2세 남규만(남궁민 분)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서진우(유승호 분)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적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베테랑' 이후 이처럼 자주 재벌 2세가 절대 악으로 그려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권력층에 대한 불신을 방증한다. 과장되는 면이 없지않아 있겠지만, 일부 재벌가의 횡포나 비리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나 복수를 원하는 대중의 바람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eujenej@osen.co.kr
[사진] '시그널',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 '베테랑'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