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의 배신이다. 살다가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결혼식을 이토록 반대할 줄이야. MBC 주말드라마 ‘내딸 금사월’이 남녀 주인공의 도둑 결혼식으로 시청자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전인화의 복수를 물거품으로 만든 윤현민과 백진희의 결혼식은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했다.
‘내딸 금사월’이 종영을 4회 남겨둔 상태에서 금사월(백진희 분)과 강찬빈(윤현민 분)의 도둑 결혼식이 이뤄졌다. 지난 14일 방송된 47회는 사월이의 엄마인 신득예(전인화 분)가 사월이와 찬빈이가 도둑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사월이는 득예의 복수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찬빈이와 결혼했다. 찬빈이는 악질인 강만후(손창민 분)의 아들. 득예는 만후에게 빼앗긴 보금그룹을 되찾았지만 사월이와 찬빈이가 결혼하면서 만후는 찬빈이가 보금그룹을 넘겨받으면 된다면서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복수를 위해 딸을 이용하면서까지 처절하게 버텨온 득예로서는 허망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동안 이 드라마는 만후의 천인공노할 악행들이 쏟아졌고, 득예의 복수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허술하고 설득력 없는 막장 전개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봤던 것은 만후가 처절하게 몰락하는 권선징악을 원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찾기 힘든 권선징악의 대리만족, 갑갑한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심리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며 결국에는 악의 축들이 무너지고 선한 인물들이 밝고 희망적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답답하고 짜증나는 악행들이 반복돼도 마지막 행복한 결말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건데, ‘내딸 금사월’은 선악의 충돌을 반복하다 보니 선과 악이 뒤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월이가 득예의 복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만후를 두둔한 것은 물론이고 만후 가족과의 억지스러운 화해를 위해 결혼을 강행하는 황당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만후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던 사월이가 한순간에 만후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득예의 복수를 망쳐버리는 일을 벌이는 것은 짜증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그야말로 권선징악을 바라는 시청자들에게 사월이가 만후 못지않은 악의 축이 되는 어이 없는 전개인 것. 막장 드라마가 아무리 널을 뛰듯 마음대로 이야기를 펼친다고 해도 넘지 않는 선이 있다. 바로 착한 주인공이 시청자들에게 지지를 받도록 예쁘게 포장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것.
허나 ‘내딸 금사월’의 김순옥 작가는 악역의 기괴한 행보와 튀는 캐릭터 쇼에 몰두하다보니 다소 밋밋할 수밖에 없는 선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죄다 놓치고 있다. 덕분에 전작인 ‘왔다 장보리’에 이어 여주인공이 민폐를 넘어 욕받이 캐릭터로 전락했다. ‘왔다 장보리’의 보리, 그리고 ‘내딸 금사월’ 사월이는 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안긴 바 있다.
선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그가 펼칠 통쾌한 일격을 기대하는 게 보통 권선징악을 내세우는 드라마들의 시청 기대 지점인데 김순옥 작가는 연달아 두 작품에서 이 같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을 했다.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서 더 이상 극성이 셀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의 빈구석을 모두가 예상 못했던 여주인공의 민폐로 채우는 느낌인지라 씁쓸함이 더하고 있다. / jmpyo@osen.co.kr
[사진] '내딸 금사월'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