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할배 파탈’이다. 할아버지를 뜻하는 방언인 ‘할배’와 치명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파탈’이 만난 신조어인데, 배우 정진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이 같은 수식어를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내 뜻을 알고 나서 황송하다며 기분 좋은 심경을 드러냈다. MBC 월화극 ‘화려한 유혹’을 보면 왜 그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어리고 멋진 후배 배우들도 물리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진영은 이 드라마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야망이 큰 전 국무총리 강석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겉과 속이 다르고 욕심 많은 악역인데 왠지 모르게 애틋한 정이 생기고 멋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진다. 강석현은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신은수(최강희 분)를 여자로서 사랑하는데, 정진영이 이 같은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대본상으로 봤을 때는, 부모 자식 간의 나이 차에 놓인 두 남녀의 사랑을 이해 못할지언정 정진영의 연기가 나이를 넘는 그 어떤 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코트인 덥수룩하게 자란 콧수염과 검정 뿔테 안경 역시 중후한 멋에 한몫을 더했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에서 특별기획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수상자답다.
지난 16일 오후 방송된 ‘화려한 유혹’(극본 손영목 차이영, 연출 김상협 김희원)에서 신은수(최강희 분)는 진형우(주상욱 분)에게 애정을 드러내다 강석현(정진영 분)에게 발각돼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석현이 그녀를 믿고 마음을 줬는데 결국 진심이 아니었다는 게 탄로 난 것이다.
은수는 이날 딸 미래(갈소원 분)의 병실을 찾은 형우를 껴안았다. 이 시각 석현이 갑작스럽게 들어왔고 두 사람의 포옹을 목격했다. 그는 곧바로 나갔지만 놀란 심장을 움켜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석현은 은수에게 자신을 속였다며 원망했다. 그러나 은수는 본인과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그의 딸 강일주(차예련 분)를 법정에 세우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앞서 일주가 미래를 아래로 밀면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놓였는데, 오랜 시간 무의식으로 있다가 이날 의식을 되찾게 댔다. 이로 인해 국회의원으로서 일주의 앞날이 어두워지게 됐다. 살인미수 죄가 적용되면 의원직이 박탈되기 때문. 형우가 일주와 석현을 교도소에 수감시키겠다는 전의를 다지면서 이 부녀가 점차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 총리는 사랑을 택했다. 이혼을 요구하는 은수에게 “난 자넬 놓치고 싶지 않다. 일주 일은 내가 잘못했다. 사진을 조작하고 자네를 기만했다”고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다. 이 같은 모습 때문에 정진영에게 ‘할배 파탈’이란 수식어가 생긴 것이다.
은수의 이혼 요구뿐 아니라 딸 일주의 배신으로 석현에게 이중고가 찾아왔는데, 그가 길 위에서 돌연 쓰러지고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으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향후 석현이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진영의 연기는 테크닉보다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생각이 깊은 표정과 발성이 좋은 목소리가 석현 캐릭터를 살린다. 가능하다면 ‘화려한 유혹’이 종영할 때까지 할배 파탈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purplish@osen.co.kr
[사진] ‘화려한 유혹’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