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가 남궁민의 죽음과 기억을 잃은 유승호의 모습을 그리며 막을 내렸다. 더 이상 아픈 과거에 얽매이지 않게 된 유승호는 웃고 있었지만, 뭔가 석연찮은 해피엔딩이다.
지난 18일 20회로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극본 윤현호, 연출 이창민, 이하 '리멤버')은 억울하게 수감된 아버지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해 거대 권력과 맞서는 천재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얻으며 방송 내내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 '변호인'의 윤현호 작가가 처음으로 쓴 드라마로 제작 단계부터 주목을 받았던 '리멤버'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는 천재 변호사라는 소재로 흥미를 유발했다. 그리고 유승호가 군 제대 후 지상파 복귀작으로 이 '리멤버'를 선택하면서 방송 전부터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알츠하이머라는 소재가 워낙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그려져왔기 때문에 식상하다는 반응도 없진 않았다. 게다가 악의 축이었던 갑질 금수저 남규만(남궁민 분)은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와 비교되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리멤버'는 부제인 '아들의 전쟁'이 의미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아들의 이야기를 부각시키며 초반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살인 누명을 쓴 아버지 서재혁(전광렬 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 서진우(유승호 분)의 안타까운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서진우가 괴롭힘을 당할수록 아버지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남규만을 통쾌하게 응징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결국 서진우는 힘겨운 싸움 끝에 남규만을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했고, 사형 판결까지 받게 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던 남규만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안하무인이었던 남규만이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또 사랑 받고 싶었던 이가 아버지였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서진우 역시 아버지의 유언대로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됐다. 힘겨웠던 5, 6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 극 말미 이인아(박민영 분)가 만난 서진우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기억까지 모두 잃었지만, 서진우에겐 지금의 상황이 해피엔딩이었다.
'리멤버'에서 유승호, 전광렬이 보여준 부자 연기는 눈물 없인 볼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고 박성웅 역시 처음 해보는 부산 사투리 연기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남궁민이다.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절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남궁민의 소름돋는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연성 떨어지는 막장극이 난무하는 요즘, 법조인과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전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안겼던 '리멤버'는 좋은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잘 만든 드라마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일호(한진희 분)와 남규만이 저질렀던 여러 가지 악행 중 일부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다 보니 마지막회에 와서 극이 급 마무리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촉박한 드라마 제작 환경 탓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떨어지는 디테일이나 리얼리티는 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천재적인 능력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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