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가 지난 18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20회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한 아버지와 아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전말이 만천하에 공개됐고, 악덕 재벌 부자(父子)는 파멸을 맞았다. 언뜻 완벽한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이 드라마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 것은, 일호그룹이 몰락했다고 악의 고리가 끊긴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일 터다.
사실 ‘리멤버’가 시종일관 절대악으로 묘사했던 것은 남규만(남궁민 분)이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이토록 괴로운 주인공이 있을까 싶도록 고통 받았던 서진우(유승호 분)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답답해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남규만의 멸망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 본 방송을 지켜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리멤버’의 최고 악당이었던 남규만은 서진우와 이인아(박민영 분), 박동호(박성웅 분)의 고군분투 끝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왠지 개운치는 않다. 남규만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악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당연한 말이다. 이 세상의 악을 전부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남규만과 일호그룹 같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악의 존재가 몰락하는 광경을 보며 잠시나마 후련함을 느낀다. 그런데 ‘리멤버’는 이 대목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바로 홍무석(엄효섭 분)의 배신이다. 남규만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잠시 통쾌한 기분을 만끽하다가도 일호그룹에 등을 돌린 홍무석의 모습에 다시 치가 떨린다. 물론 홍무석도 법의 철퇴를 맞았지만, 그의 새로운 의뢰인은 또 다른 홍무석을 찾아 악행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서재혁(전광렬 분)과 서진우가 피해를 호소할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남규만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그를 단죄한 것은 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그의 아버지였다. 죽음조차 오만했던 남규만이지만 그에게도 연민이 생긴다.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가 결국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삐뚤어지기 시작했던 것처럼, 남규만 역시 내내 아버지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뒤 멍하니 감옥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 한 줄기를 흘리던 남규만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쁜 놈’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음은 분명하다.
‘리멤버’는 이처럼 씁쓸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조명하며 보는 이들의 분노와 공감을 동시에 샀다. 사실 공감보다는 분노가 더 컸던 작품이지만, 이 사회에 던진 시사점만은 분명히 한 채로 유종의 미를 거둔 듯하다. 18일 종영한 ‘리멤버’의 후속으로 오는 24일부터 ‘돌아와요 아저씨’가 방송된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