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기안84가 N포 세대를 대표하는 30대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3포에 내 집, 인간관계까지 제한된 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꿈과 바람은 갖고 있었기에 희망적이었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33살 기안 84가 무지개 회원으로 출연해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생활을 불안했지만 영혼 만큼은 자유로웠다.
가장 눈길을 끈 점은 그가 사는 집도 없이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네이버에서 일을 하고, 잠을 청한다는 것이었다. 기안 84는 “제가 (만화 원고)마감이 맨날 늦었다. 늦어도 더 재미있는 게 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네이버에 잡혀 들어왔다.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라. 요즘에는 들어와서 지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하루에 7컷씩 여유롭게 그리다가 마감 당일에는 하루 동안만 무려 40컷을 그릴 정도로 빡빡한 하루를 보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네이버 웹툰 담당자들도 초조하긴 마찬가지. 자리에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그를 재촉했다. 기안84는 마감 시간인 오후 11시를 한참 지난 23분께 메일 전송을 완료했다. 그러나 오탈자 및 그림을 수정해 재전송하느라 결국 세 번째 만에 작업을 완성했다. 일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것.
그는 밤 12시가 돼서야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웠고, 동료인 박태준과 통화를 한 뒤 사무실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맨날 회사에 있으니까 정서적으로도 편안하다. 이게 적응이 돼서 집을 안 구하려고 한다”며 집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튿날 늦은 아침 일어난 기안84는 회사 화장실에서 씻었으며, 아침식사도 직원들과 먹지 않고 혼자서 스마트 폰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며 후딱 먹어치웠다. 추운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리저리 전전하며 남들에게 짐이 됐다고 여긴 그는 근처 부동산에 들어가 전셋집 상담에 들어갔는데, 사무실 근처 30평대 아파트가 6억5천만 원이라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주택은 그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는 과거에도 집을 구해 혼자 살았었지만 집에서도 스마트 폰만 보고, 별 다르게 하는 일이 없는데도 각종 공과금 등을 처리하는 부분이 아쉽다며 집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는데 당시 이걸 하면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했다. 군대 말년 즈음에 웹툰이 나왔는데 저도 나가서 웹툰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경험을 담아서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기안84의 일상은 치열함과 고민을 담고 사는 2030대 N포 세대와 같았다. 안정감 없이 불안했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했던 것들을 어머니에게 다 해드리겠다는 의지와 결심은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따뜻한 울림을 전했다./ purplish@osen.co.kr
[사진] ‘나 혼자 산다’ 방송화면 캡처